[절대주의] 프랑스의 절대주의는 영국에 비해서 약 100년쯤 늦게 나타났으나 가장 대표적인 절대 왕정을 이룩하였다. 구교도의 세력이 강하였던 프랑스에서는 왕이 신교도…

[절대주의]

프랑스의 절대주의는 영국에 비해서 약 100년쯤 늦게 나타났으나 가장 대표적인 절대 왕정을 이룩하였다. 구교도의 세력이 강하였던 프랑스에서는 왕이 신교도(위그노)를 탄압하였기 때문에 종교적인 분쟁이 끊이지 않았다. 그러다가 부르봉 왕조를 세운 앙리 4세의 낭트 칙령(1598년)에 의해 신교도도 신앙의 자유를 얻게 되었다. 이때부터 프랑스의 왕권이 강화되기 시작하여 태양왕이라고 불렸던 루이 14세(재위 1643~1715년) 때 절정에 이르렀다.

[루이 14세의 정치]

루이 14세는 왕권신수설을 믿어 독재 정치를 하였는데, '짐이 곧 국가다'라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또한 중상주의 정책을 써서 산업을 일으키고 무역에 힘썼으며 강한 군사력을 길러 국위를 떨쳤다. 루이 14세는 영토를 늘리기 위하여 유럽 최강을 자랑하는 육군과 풍부한 경제력을 바탕으로 네 차례나 침략 전쟁을 일으켰다. 그러나 유럽의 세력 균형을 바라는 영국 등 여러 나라의 대항으로 실패하였다. 이와 같은 여러 차례의 전쟁과 호화로운 궁전 생활 등으로 나라의 재정은 점점 어려워졌고 이것이 후에 프랑스 대혁명의 한 원인이 되었다.

[루이 14세의 문화 장려]

루이 14세는 문화에 대한 관심이 많아 귀족과 문인·예술가들을 궁전에 불러들이는 등 문화를 장려하였는데, 이때부터 파리가 유럽 문화의 중심지가 되었다. 베르사유 궁전이 건설된 것도 이때이다. 또한 중국 도자기도 몹시 좋아하였으며, 《논어》 등의 중국 고전도 라틴 어로 번역해 간행하도록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