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자군 운동과 교황권] 십자군 운동은 교황의 제창으로 일어났고 처음에는 성공도 거두었으므로 교황의 권위를 한층 높여 주었다. 그러나 십자군의 실패로 흔들리기 시작한…

[십자군 운동과 교황권] 십자군 운동은 교황의 제창으로 일어났고 처음에는 성공도 거두었으므로 교황의 권위를 한층 높여 주었다. 그러나 십자군의 실패로 흔들리기 시작한 교황의 권위는 왕권 강화에 따라 점점 더 쇠퇴하게 되었다.

[교회의 대분열] 14세기 초에 프랑스 왕 필리프 4세는 교황 보니파키우스 8세와 싸워 굴복시킨 후 교황청을 남프랑스의 아비뇽으로 옮겨 버렸다. 이로부터 약 70년 동안 교황은 프랑스 왕의 지배하에 있었는데, 그 후 로마에도 또 다른 교황이 생겨 서로 대립하는 상태가 되었다. 이를 교회의 대분열이라 한다.

[개혁 운동과 교황권의 쇠퇴] 교황의 위신이 땅에 떨어지자 전부터 교회의 부패에 대해 비판적이었던 사람들 사이에서 개혁을 부르짖는 소리가 높아졌다. 그러한 가운데 위클리프는 성직자의 타락을 신랄하게 비판하고, '성서에 바탕을 둔 개혁'을 주장하였다. 이에 영향을 받은 보헤미아(현재 체코의 서부 지방)의 후스도 개혁 운동을 일으켜 민중들 사이에 커다란 반응을 불러일으켰다. 이에 당황한 교회는 1414년에 콘스탄츠 공의회를 열어 후스를 이단자로 몰아 처형하는 한편 '교회의 대분열'을 수습하였으나 교회의 권위를 회복할 수는 없었다.

[후스] 보헤미아의 종교 개혁가이다. 교회 내부의 타락과 로마 교황의 부정을 공격하였으나 1414년에 콘스탄츠 공의회에 넘겨져 이듬해에 처형당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