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정 복고] 크롬웰은 새 공화국의 우두머리가 되어 여러 가지 개혁을 실시하였다. 또 그는 반대파를 누르려고 강한 권력을 휘둘렀다. 개혁을 실행하기 위한 것이었지만 …

[왕정 복고] 크롬웰은 새 공화국의 우두머리가 되어 여러 가지 개혁을 실시하였다. 또 그는 반대파를 누르려고 강한 권력을 휘둘렀다. 개혁을 실행하기 위한 것이었지만 너무 엄격한 정치를 하였으므로 그는 국민들의 반감을 샀다. 그리하여 크롬웰이 죽자 혁명을 반대하는 운동이 일어나 공화 정부가 무너졌다. 그리고 1660년에 프랑스에 도망가 있던 찰스 1세의 아들 찰스 2세가 돌아와 왕위에 오름으로써 왕정이 복고되었다.

[명예혁명의 성공] 찰스 2세와 그의 뒤를 이은 제임스 2세는 가톨릭 신자로서 가톨릭교도의 편만 들고 국민의 의사를 존중하지 않았기 때문에 왕을 바꾸려는 움직임이 일어났다. 이에 의회는 제임스 2세를 추방하고 왕의 맏딸인 메리와 그의 남편인 윌리엄을 새 왕으로 즉위시켰다. 국민의 지지를 잃은 제임스 2세는 프랑스로 달아났으므로 혁명은 한 방울의 피도 흘리지 않고 성공하였다(1688년). 따라서 혁명이 명예롭게 이루어졌다고 하여 명예혁명이라고 한다.

[영국 입헌 정치의 확립] 새로 왕위에 오른 신교도인 윌리엄 3세(재위 1689~1702년)는 의회가 내놓은 '권리 선언'이라는 문서에 서명함으로써 의회와 국민의 권리를 확인하고 의회를 존중할 것을 다짐하였다. 이 권리 선언은 곧바로 '권리 장전'이란 이름으로 공포되었다. 이리하여 국왕의 절대주의와 국민의 입헌주의와의 투쟁은 국민의 승리로 끝을 맺고 국가의 주권은 의회로 돌아가 영국의 입헌 정치가 확립되었다.

[권리 장전] 명예혁명 직후인 1689년에 제정된 법률로 의회의 동의 없이 왕이 마음대로 권력을 행사할 수 없도록 하였다. 그 내용은 첫째, 의회의 동의 없이는 세금을 징수하지 못하며 상비군을 유지할 수 없다. 둘째, 선거 및 언론의 자유와 잔인한 형벌의 금지 그리고 자주 의회를 열 것 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