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혁명의 발발] 프랑스는 나폴레옹 시대에 많은 영토를 차지하였지만, 빈 회의의 결정에 따라 정복한 땅을 돌려주고 프랑스 혁명 이전의 상태로 돌아갔다. 루이 18…

[7월 혁명의 발발] 프랑스는 나폴레옹 시대에 많은 영토를 차지하였지만, 빈 회의의 결정에 따라 정복한 땅을 돌려주고 프랑스 혁명 이전의 상태로 돌아갔다. 루이 18세의 뒤를 이은 샤를 10세는 빈 체제 밑에서 자유주의를 억압하고 성직자와 귀족을 보호하는 반동 정치를 하였다. 한편 1830년 5월에 실시한 총선거의 결과 샤를 10세의 정치에 반대하는 자유주의자(자유당)가 많은 의석을 차지하였다. 이에 왕은 의회를 해산시키고 선거법을 마음대로 개정하려 하였다. 국왕의 이와 같은 행동은 파리 시민을 크게 격분시켜 드디어 같은 해 7월에 혁명이 일어났다. 그리하여 샤를 10세는 영국으로 도망가고 루이필리프를 왕으로 맞이하였다. 이것을 7월 혁명이라 한다.

[혁명의 영향과 벨기에의 독립] 7월 혁명의 성공은 유럽 여러 나라에 자극을 주어 폴란드·독일·이탈리아 등에서도 자유주의 운동이 일어났다. 그러나 보수 세력에 의해 모두 실패로 돌아가고, 다만 네덜란드에 합병되었던 벨기에가 이때 독립을 달성하였다.

[7월 왕정] 7월 혁명 후에 일어난 프랑스의 왕정으로, 국왕은 루이필리프이다. 이 왕정은 선거 자격을 완화하는 데 노력하여 유권자 수가 20만이 넘었다. 그러나 새 유권자들은 대부분이 상층 부르주아들로서, 국내외 정책도 거의 이들에 의해 이루어져 전형적인 부르주아 왕국의 성격을 띠었다. 그러나 1848년 2월에 다시 혁명이 일어나 7월 왕정은 무너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