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크 족의 융합 정책] 서유럽 각지에 게르만 족이 세운 나라들은 대부분 오래가지 못하고 무너졌다. 이는 멀리서 이동해 온 소수의 정복자가 문화적으로 앞서 있는 다…

[프랑크 족의 융합 정책] 서유럽 각지에 게르만 족이 세운 나라들은 대부분 오래가지 못하고 무너졌다. 이는 멀리서 이동해 온 소수의 정복자가 문화적으로 앞서 있는 다수의 원주민(로마 인)을 지배해 나가기가 힘에 겨웠기 때문이다. 그러나 원주지를 떠나지 않고 갈리아 지방에 퍼져 나간 프랑크 족은 그들의 전통을 간직하면서 원주민과 융합하여 발전할 수 있었다.

[프랑크 왕국의 성립과 발전] 5세기 말에 '메로빙거 집안'의 클로비스가 프랑크 족을 통일하고 프랑크 왕국을 세웠다. 클로비스는 로마 교회의 교리를 받아들여 가톨릭교를 믿었는데, 이것이 프랑크 왕국 발전의 커다란 요인이 되었다. 프랑크 왕국은 가톨릭 신자들인 원주민과 교회의 협조를 받아 다른 게르만 족들을 정복하면서 영토를 넓혀 나갈 수 있었던 것이다. 그 후 메로빙거 왕조는 7세기 말부터 쇠퇴하고 귀족이 실권을 잡게 되었는데, 귀족의 대표자인 카를 마르텔은 에스파냐로부터 침입해 온 이슬람 군을 투르-푸아티에 전투에서 격파하여 프랑크 왕국과 크리스트교를 수호하였다. 또한 그의 아들 피핀은 로마 교황의 지지를 얻어서 751년에 왕위에 올라 카롤링거 왕조를 열었다. 그리고 그는 교황을 위협하던 랑고바르드 왕국을 쳐서 정복한 일부 영토를 교황에게 바쳤다. 이리하여 로마 교황과 프랑크 왕국은 밀접한 관계를 맺게 되었다.

[투르-푸아티에 전투] 카를 마르텔이 이슬람 군을 물리친 싸움이다. 732년 여름, 이슬람 군이 피레네 산맥을 넘어 프랑크 왕국으로 침입하였을 때 프랑크 왕국의 카를 마르텔은 투르와 푸아티에 사이에서 이슬람 군을 물리쳤다. 이 전투는 이슬람교도의 침략으로부터 서유럽의 크리스트교를 수호하였다는 점에서 역사적 의의가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