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나라의 건국] 은 왕조의 뒤를 이어 주(周) 왕조가 중국을 지배하였다. 주나라도 처음에는 은 왕조를 받드는 도시 국가의 하나였다. 주나라는 차차 세력이 커져 문왕…

[주나라의 건국] 은 왕조의 뒤를 이어 주(周) 왕조가 중국을 지배하였다. 주나라도 처음에는 은 왕조를 받드는 도시 국가의 하나였다. 주나라는 차차 세력이 커져 문왕 때에 이르러서는 서방 여러 왕후의 우두머리가 되었다. 그 후 기원전 1100년경 주의 무왕은 마침내 은 왕조를 멸망시키고, 호경에다 도읍을 정하였다.

[주나라의 봉건 제도] 주 왕조는 정복한 땅을 효과적으로 다스리기 위하여 봉건 제도를 실시하였다. 곧 왕족과 공신들을 제후로 삼아 그들에게 영토를 나누어 주고, 대대로 그 땅을 다스리게 하는 제도이다. 한편 제후들도 자기의 영지를 일족이나 부하에게 나누어 주었다. 이처럼 주의 봉건 제도는 핏줄을 중심으로 성립되었다. 왕은 수도 부근만 직접 통치하고, 각 지방을 맡아 다스리는 제후들에게는 공납과 군역의 의무를 지게 하였다. 공납이란 토산물을 바치는 것이고, 군역이란 군사적으로 봉사하는 것을 말한다. 왕과 제후 밑에는 경·대부·사로 불리는 귀족들이 있었으며, 이들이 지배층을 이루었다. 그리고 이들 지배층 사이에 핏줄을 같이하는 사람들끼리 종족(씨족)을 형성하고, 조상의 제사를 중심으로 단결하는 풍습이 생겨 널리 퍼졌다. 이를 종법 제도라 하는데, 혈연적인 봉건 제도를 밑에서 받쳐 주는 구실을 하였다. 또 주나라에서는 장자 상속 제도를 확립하였으며, 동성불혼의 법도 만들었다. 씨족의 질서와 단결을 유지하기 위한 이와 같은 여러 가지 법속은 뒷날 중국 가족 제도의 바탕이 되었다.

[농민들의 생활] 농민들은 토지신에게 제사를 지내며 씨족적인 촌락 공동체를 이루고 생활하였다. 은나라 때보다 청동기 문화가 한층 발달했지만, 일반 농민들은 여전히 석기·목기를 사용하여 농사를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