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의 식민지 정책/세포이의 항쟁

[영국의 식민지 정책]

영국은 프랑스와의 식민지 전쟁에서 승리한 18세기 중엽부터 인도 경영에 더욱 열을 올렸다. 

이는 영국의 산업 혁명이 진행됨에 따라 식민지로서 인도의 중요성이 한층 커졌기 때문인데 인도는 방직 공업의 원료인 목화가 많이 생산될 뿐만 아니라 상품의 소비 시장으로서도 큰 몫을 했다.

당시 인도는 무굴 제국이 쇠퇴하고 여러 지방 세력이 서로 대립하고 있던 상태였으므로 무력을 앞세운 영국의 식민지 확대 정책은 순조롭게 진행되어 인도의 대부분을 손아귀에 넣을 수 있었다.

이 때 영국의 동인도 회사는 인도를 통치하는 기관으로 바뀌었는데, 영국군만으로는 손이 모자라 인도인들을 병사로 고용해 식민지를 다스리기도 하였다. 이들 병사를 세포이라고 한다.

그러나 영국의 지배는 인도의 통치 제도는 물론 경제 생활과 사회 질서를 큰 혼란에 빠뜨렸고 결국 영국의 인종 차별과 식민지 지배에 대한 인도인들의 반영(反英) 감정이 폭발하여 1857년 마침내 항쟁이 일어났다.
 
[세포이의 항쟁] 

영국군은 세포이들에게 새로 지급된 총을 닦는 데 소와 돼지 기름을 사용하게 했다.

그런데 소는 힌두교도가 가장 신성시하는 동물이고, 돼지는 이슬람교도가 싫어하는 동물이었기 때문에 세포이들은 영국의 의도가 인도인들의 신앙을 없애고 크리스트교를 강제로 믿게 하려는 것이라 여겼으며, 이것이 동기가 되어 항쟁이 일어났다.

이 항쟁은 많은 인도인들의 호응을 얻어 중부 인도에 큰 세력을 가지는 반영(反英) 민족 운동으로 발전하였다. 세포이가 중심이 되어 일어났다고 해서 이를 세포이의 항쟁(1857~1859년)이라고 한다.

그러나 2년간에 걸친 세포이의 항쟁은 실패로 끝났고 영국은 이 항쟁을 계기로 무굴 제국을 멸망시킴과 동시에 동인도 회사를 폐지하고 인도를 본국 정부의 직접 통치 아래 두었다.

1877년에는 빅토리아 여왕이 인도 황제를 겸하는 인도 제국이 성립되어 인도는 완전히 영국의 식민지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