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굽타 왕조의 통일과 번영] 쿠샨 왕조의 제3대 왕 카니슈카가 죽은 뒤 인도는 다시 혼란에 빠졌으나 4세기 초 갠지스 강 유역에서 일어난 굽타 왕조에 의하여 다시 통…

[굽타 왕조의 통일과 번영]

쿠샨 왕조의 제3대 왕 카니슈카가 죽은 뒤 인도는 다시 혼란에 빠졌으나 4세기 초 갠지스 강 유역에서 일어난 굽타 왕조에 의하여 다시 통일되었다. 굽타 왕조는 찬드라 굽타 2세 때에 전성기를 맞아 그때까지의 인도 역사상 가장 넓고 강한 나라로 발전하였다. 굽타 왕조는 당시 동서 무역의 중심지였던 서인도까지 지배했으며 국가 재정도 튼튼하여 도시가 번영하였다. 이 나라의 번영한 모습은 당시 이곳을 방문했던 중국의 중 법현의 여행기인 《불국기》에 자세히 기록되어 있다.

[힌두교의 성립과 발전]

이 시대는 전통 문화에 대한 관심이 높아 종교 면에서도 고대 아리아 인의 브라만교를 부활시킨 힌두교가 성립되었다. 힌두교는 브라만교를 바탕으로 하여 민간 신앙과 불교의 일부 교리가 합쳐져서 새로운 모습으로 성립된 것으로 민족적 성격이 강한 종교이다. 힌두교가 발전함에 따라 불교는 차츰 쇠퇴했는데, 주된 원인은 불교의 평등사상이 인도인의 철저한 계급 관념과 맞지 않았기 때문인 듯하다. 그리하여 카스트 제도에 기초를 둔 인도인의 생활 윤리는 힌두교에 뒷받침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힌두교의 교리를 바탕으로 도덕, 습관, 법률 등 인도인의 생활 전반을 규정한 <마누 법전>도 굽타 왕조 시대에 갖추어졌다.

[굽타 왕조의 멸망]

굽타 왕조는 6세기경에 북쪽에서 침입한 유목민인 에프탈 족의 침략을 받아 망하였다. 그 후 바르다나 왕조가 나타나 한때 북인도를 통일하였으나 7세기 중엽부터는 인도 전체가 오랫동안 분열 상태에 빠져 들었다.     

[라마야나]

<라마야나>는 인도 고대의 대서사시로, <마하라바타>와 더불어 고전 산스크리트 문학의 최고봉을 이룬다. 내용은 코살라 왕국의 왕자인 라마와 그의 부인 시타에 대한 이야기로, 총 7편 2만 4,000여 송(頌)으로 되어 있다. 여러 인도 말로 번역된 이 이야기는 농민을 비롯한 힌두 사회 전반에 널리 보급되었고 인도인의 생활 규범에 커다란 영향을 끼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