붕당 정치/예송을 통해 본 붕당 정치

[붕당 정치]

1. 붕당 간의 권력 다툼 
동서 분당으로 시작된 붕당 정치는 곧 서인과 남인, 북인이 대립하는 형세로 바뀌더니, 왜란과 호란을 거친 뒤에는 북인이 우세해졌다. 그러다가 인조반정으로 북인이 밀려나고 서인이 정권을 잡더니, 다시 남인이 끼어들어 서인과 남인 사이에 다툼이 일어났다.

2. 붕당 정치가 성숙한 시기
붕당 정치는 현종 때에 이르러 무르익었다. 당시에는 붕당 간의 대립에서 소수당을 존중하였고, 공개적인 비판과 견제가 가능하였다.

[예송을 통해 본 붕당 정치]

1. 효종의 장례 절차에 관한 논쟁
1659년 효종이 세상을 떠났을 때에는 그의 계모인 조 대비가 얼마 동안 상복을 입어야 옳은가에 대한 격렬한 논쟁이 서인과 남인 사이에 일어났다. 이 논쟁이 바로 예절에 관한 유명한 논쟁인 예송(禮訟)의 시초다.

2. 2차에 걸친 예송
(1) 예송은 2차에 걸쳐 일어났는데, 1차 때에는 효종이 인조의 제2왕자이므로 조 대비는 상복을 1년간 입어야 한다고 주장한 서인이 승리하였다. 이때 남인은 효종이 제2왕자이기는 하나 대통을 이어 왕이 되었으므로 적장자로 대우해 상복을 3년 입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2) 몇 년 뒤 효종의 비가 죽자 서인은 9개월, 남인은 1년을 주장하였는데, 이 2차 예송 때에는 남인이 이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