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민 통치 정책의 변화/문화 통치의 실상

[식민 통치 정책의 변화] 

1. 무단 통치의 한계 
3·1 운동은 일제의 무력에 의해 일단 꺾이고 말았다. 그러나 일제는 한민족의 단결력에 놀란 데다 국제 여론도 나빠지자, 이전의 무단 통치로는 한민족을 지배하기 어렵다는 사실을 깨닫고 새로운 식민 통치 정책을 찾게 되었다. 그래서 나온 것이 이른바 문화 통치이다.

2. 기만적인 문화 통치
문화 통치는 회유와 유화 정책을 통해 한국민을 분열시키는 한편, 일제의 잔혹한 식민 통치를 감추기 위한 기만 정책이다. 즉, 보다 효과적인 통치를 위해 종래의 무단적인 강압 정책을 겉으로나마 완화시켜야 한다고 생각하여, 새로운 조선 총독으로 사이토를 임명하고 문화 통치를 표방하였다.

[문화 통치의 실상] 

1. 문관 총독 임명과 보통 경찰제 실시 
일제는 지금까지 육군과 해군 대장만으로 임명하던 조선 총독을 문관도 임명할 수 있게 하며, 헌병 경찰제를 보통 경찰제로 한다고 하였다. 그러나 실제로 일제가 한국에서 물러날 때까지 단 한 명의 문관 총독도 임명되지 않았고, 보통 경찰로의 전환도 기존의 헌병 경찰이 제복만 바꾸어 입은 데 지나지 않았다. 오히려 경찰의 수와 장비 및 유지비는 3·1 운동 전보다 몇 배로 늘어났다.

2. 한글 신문의 허가와 교육 기회 확대
일제는 <동아일보>와 <조선일보> 등의 민족계 신문을 허가함과 동시에 교육의 기회를 넓혀 준다는 명목으로 문화 통치를 구호로 내세웠다. 그러나 교육 수준 역시 초급 학문과 기술 교육 정도였고, 그나마 허가한 한글 신문도 검열을 강화해 제대로 발행되지 못하였다. 이들 신문은 기사의 삭제, 압수, 정간, 폐간 등의 처분을 수시로 당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