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도 참변과 자유시 참변, 미쓰야 협정/독립군의 통합/중국군과의 연합

[간도 참변과 자유시 참변, 미쓰야 협정] 

1. 간도 참변
봉오동 전투와 청산리 대첩 등으로 큰 타격을 입은 일제는 독립군은 물론 그 기반마저도 완전히 없애기 위해 간도 지역에서 1만여 명의 동포를 학살하고 마을에 불을 지르는 한편, 무자비한 약탈을 감행하였다.

2. 자유시 참변
간도 참변 등으로 독립군은 한때 각지로 흩어졌지만, 이후 주력 부대들은 소련·만주 국경에서 대한 독립 군단을 조직하였다. 대한 독립 군단은 연해주의 자유시로 이동하였는데, 무장 해제를 요구하는 소련의 적색군에게 공격을 당해 큰 피해를 입었다.

3. 미쓰야 협정
일제는 독립군 탄압을 위해 1925년 만주의 지배자 장쭤린과 조선 총독부 경무 국장 미쓰야 사이에 독립군 체포에 현상금을 건, 미쓰야 협정을 맺었다. 이후 중국의 관리와 군경들이 독립군을 체포하여 일본군에 넘기는 사태가 벌어졌다.

[독립군의 통합] 

일제의 탄압 속에서 독립군은 조직을 재정비하며 통합 운동을 꾀하였다.

1. 참의부와 정의부, 신민부
(1) 압록강 대안에는 임시 정부 직할 아래 육군 주만 참의부가 설립되고, 길림과 봉천 지역에서는 정의부가 창설되었다. 그리고 북만주에서도 새로운 통합 운동이 일어나 대한 군정서와 대한 독립 군단 등이 신민부를 결성하였다.
(2) 그리하여 1925년을 전후한 시기에는 한∙만 국경 지대는 참의부, 하얼빈 이남 흥경 이북 지역은 정의부, 북만주 영안을 중심으로 한 지역은 신민부가 담당하면서 항일 독립 운동을 전개하였다.

2. 3부의 활동
3부는 각기 그곳 한민족의 자치를 집행하는 민주적인 형태의 민정 기관을 두고 헌장을 제정해 입헌적 정치 조직을 갖추었다. 아울러 독립군의 훈련과 작전을 맡은 군정 기관도 마련하였다.

3. 국민부 창설 
독립 운동가들은 3부(참의부·정의부·신민부)의 통합을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여, 1928년에 3부를 하나로 묶어 국민부를 창설하였다. 이로써 무장 독립 전쟁은 더욱 활발하게 전개되었다.

[중국군과의 연합]

일제가 만주를 침략하고 만주국이라는 괴뢰국을 세우자, 독립군은 일제에 대항하려는 중국군과 연합해 한중 연합군을 조직한 뒤 합동으로 일본군과 맞서 싸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