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의 건국 과정/태조 왕건/태조의 정책

[고려의 건국 과정]

후삼국 가운데 가장 세력이 컸던 후고구려의 궁예는 점차 교만해져 사치한 생활을 일삼고 사람을 함부로 죽이는 등의 폭정으로 민심을 잃었다. 이에 본래 궁예의 부하로 있으면서 많은 공을 세워 힘을 기른 왕건은 918년에 궁예를 내쫓고 여러 사람의 추대를 받아 왕위에 올랐다. 왕건이 곧 고려의 태조이다.

[태조 왕건]

왕건은 본래 송악의 호족 출신으로, 신라 변경에 설치된 군진 세력을 배경으로 크게 세력을 모아 궁예가 세운 후고구려의 시중(지금의 수상)으로 임명되었다. 그 뒤 궁예가 민심을 잃자 홍유, 신숭겸 등이 궁예를 몰아내고 왕건을 추대하였다.

[태조의 정책]

1. 국호의 변경와 수도 이전 
왕건은 즉위 후 고구려의 후계자라는 뜻에서 나라 이름을 고려로 고치고, 연호를 천수라 하였다. 이듬해에는 도읍을 고향인 송악으로 옮겼다.

2. 국가의 안정 도모 
왕건은 많은 호족과 승려, 학자들과 손을 잡고 어지러운 세상을 바로잡으려 하였다. 세금 제도를 가볍게 하고, 혼란기에 억울하게 노비가 된 자들을 해방시켜 주는 등 백성을 보호하는 정책을 펴 궁예 때보다 나라의 힘을 크게 키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