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조선의 정복 사업과 중계 무역/한나라의 침략과 고조선의 멸망

[고조선의 정복 사업과 중계 무역]

위만이 왕이 되는 것을 돕고, 그 뒤 고조선을 이끌어 간 세력은 발달한 철기 문화를 가진 이주민 집단이었다. 이들은 아직 청동기 문화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한 토착 세력과 연맹을 맺으면서 성장하여 강력한 힘을 가지고 정복 사업을 전개하였다. 그리하여 넓은 영토를 가지고 중국 세력에 꿋꿋이 맞서는 한편, 동방의 예나 남방의 진이 중국과 직접 교역하는 것을 막아 중계 무역의 이익을 독점하였다. 

[한나라의 침략과 고조선의 멸망]

고조선이 강성해져 중국과 맞서게 되자, 당시 정복 사업에 열중해 있던 한의 무제는 수륙 양면으로 대군을 보내 고조선을 공격하였다. 고조선은 침입한 한나라 군대에 대항해 1년간이나 싸웠으나, 결국 서울인 왕검성이 함락되면서 기원전 108년에 멸망하였다. 이리하여 문화적으로 가장 앞섰던 고조선 사회는 한나라에 예속되었고, 이로 인하여 우리나라 고대 왕국의 출현은 늦어지게 되었다. 그러나 고조선이 이와 같이 끈기 있게 한에 대항할 수 있었던 것은 우리나라에서 그만한 문화가 발전하고 있었음을 보여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