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몽 운동의 전개] 영국의 식민지가 된 인도는 세포이의 항쟁 후에도 반영 독립 운동이 계속되었고, 근대화를 위한 자체의 개혁에도 힘썼다. 인도의 지식인들은 영국의 …

[계몽 운동의 전개] 영국의 식민지가 된 인도는 세포이의 항쟁 후에도 반영 독립 운동이 계속되었고, 근대화를 위한 자체의 개혁에도 힘썼다. 인도의 지식인들은 영국의 선진 문물을 받아들이는 동시에, 악습의 폐지 등을 위한 계몽 운동을 전개하였다.

[반영 민족 운동] 인도인들은 인도 국민 회의를 중심으로 영국의 식민 정책에 대항하였다. 인도 국민 회의는 본래 인도 총독이 만든 것으로, 인도의 상류 계급으로 구성된 일종의 본국과 인도의 협조 기관이었으나, 민족주의가 성해지자 계급과 종파를 초월한 민족 독립 운동의 중심 기관이 되었다. 영국은 인도 민족 운동의 분열을 꾀하여 힌두교도와 이슬람교도를 분리시키려는 '벵골 분할령'을 공포하였다(1905년). 그러나 이 분할령은 인도인의 거국적인 반영 민족 운동을 불러일으켜 국민 회의는 영국 상품 배척, 국산품 애용(스와데시), 자치 획득(스와라지), 민족 교육의 네 가지 목표를 결의하여 반영 운동을 더욱 거세게 벌였다. 이 같은 운동은 인도 자체의 산업 발달과 민족 교육의 보급에 큰 성과를 가져왔다. 이에 영국은 '전 인도 회교도 연맹'을 조직하여 반영 운동을 방해하였으나, 회교도들도 차츰 반영 운동에 합세함으로써 효과를 얻지 못하였다.

[인도 국민 회의] 1885년에 설립되어 인도 최대의 정치 조직이 되어 온 정당이다. 처음에 인도 국민 회의는 상인·자본가·지주·지식인 등을 배경으로 조직되어 영국인과 협조하여 인도인의 생활을 향상시키려는 온건 노선을 걸었다. 그러나 1905년 벵골 분할령 공포 이후 국민 회의는 반영국 독립 노선으로 바뀌어 인도 민족 운동의 중심 세력이 되었다.

[벵골 분할령] 1905년에 인도 총독 커즌이 벵골 지방을 이슬람교도가 많이 거주하는 지역과 힌두교도가 많이 거주하는 지역으로 갈라놓기 위하여 공포한 것이다. 영국은 힌두교도와 이슬람교도의 대립을 이용하여 반영 민족 운동이 거세었던 벵골 지방을 분할함으로써 인도 민족 운동의 약화를 꾀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