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경제·정치적 혼란] 정치적 변동이 거듭되는 가운데 로마의 사회·경제 상태도 변화되어 갔다. 정복 전쟁이 끝나 노예를 얻을 수 없게 된 대지주들은 노예를 부려서…

[사회·경제·정치적 혼란] 정치적 변동이 거듭되는 가운데 로마의 사회·경제 상태도 변화되어 갔다. 정복 전쟁이 끝나 노예를 얻을 수 없게 된 대지주들은 노예를 부려서 농장을 경영하던 방법을 바꿔 농민들을 소작인으로 삼아 토지를 빌려 주고 지대(소작료)를 받는 형식을 취하였다. 이들 소작인은 이동의 자유를 잃고 반노예가 되었는데 이를 콜로누스라 불렀다. 한편 콜로누스 제도가 발달함에 따라 국가 권력에 복종하지 않는 호족들이 각지에 생겨 국가의 지배로부터 떨어져 나갔다. 따라서 로마 제국의 지방 통제력은 점점 약화되어 갔고 4세기 후반에 이르러서는 게르만 족의 대이동이 일어나면서 로마 제국 안으로 밀려들어 와 큰 혼란에 빠졌다.

[로마의 분열과 멸망] 당시의 황제 테오도시우스 1세는 크리스트교를 국교로 삼고 전제 정치를 강화하여 혼란을 수습하려 했지만 상황은 이미 기울어져 있었다. 그는 대제국을 한 정부 밑에서 다스리기가 어렵다고 생각하고 죽을 때 로마의 영토를 두 아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따라서 로마 제국은 동서로 갈라졌다. 콘스탄티노플을 수도로 정한 동로마 제국은 그 후 약 1,000년 동안 명맥을 이어갔으나, 로마를 수도로 정한 서로마 제국은 게르만 민족의 침입을 받아 476년에 멸망하였다.
 
[콜로누스] 처음에는 로마의 자영 농민을 일반적으로 콜로누스라 하였으나 로마 말기에는 소작인을 뜻하게 되었다. 그들은 노예나 해방 노예와는 달라 신분상으로는 자유민에 속했으며 가족과 재산을 소유했다. 그러나 농지를 떠나는 일과 다른 신분 사람들과의 통혼이 금지되었으며 세습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