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의 전쟁 준비] 독일은 베르사유 조약에 따라 군비가 크게 제한되고 독일과 프랑스의 완충 지대인 라인란트에는 군대를 주둔시킬 수 없게 되어 있었다. 그러나 히틀러…

[독일의 전쟁 준비] 독일은 베르사유 조약에 따라 군비가 크게 제한되고 독일과 프랑스의 완충 지대인 라인란트에는 군대를 주둔시킬 수 없게 되어 있었다. 그러나 히틀러는 1933년에 국제 연맹을 탈퇴하고 1935년에 재군비 선언과 함께 징병제를 부활한 데 이어 이듬해에는 라인란트에까지 군대를 주둔시켰다. 그리고 같은 해 가을부터는 4개년 계획을 세워 본격적인 전쟁 준비에 들어갔다.
 
[이탈리아의 해외 침략] 무솔리니의 파시스트 정권이 지배하는 이탈리아도 경제 공황으로 크게 고통을 받고 있었으므로 무솔리니는 국민의 불만을 밖으로 돌리기 위해 외국 침략을 꾀하였다. 1935년 독일의 재군비 선언으로 세계가 소란한 틈을 타서 그는 에티오피아에 침입하였다. 국제 연맹은 즉시 이탈리아를 침략자로 규정하고 군사용 물자를 이탈리아에 일체 팔지 않기로 결의했으나 이탈리아의 침략을 막을 수는 없었다. 결국 이탈리아는 에티오피아를 완전히 정복했을 뿐만 아니라 독일을 뒤따라 국제 연맹에서도 탈퇴하였다(1937년).

[독일과 이탈리아의 제휴] 이러한 상황 속에서 독일과 이탈리아의 관계는 급속히 가까워져 1936년 양국은 독일은 이탈리아의 에티오피아 정복을 인정하고 이탈리아는 독일의 오스트리아 진출을 인정하는 협약을 맺었다. 이를 베를린·로마 추축이라 한다. 또 이 협약에서는 두 나라가 향후 외교 문제에 있어서도 공동 보조를 취할 것을 약속하였다.
 
[에스파냐 내란] 에스파냐에서는 1931년에 혁명이 일어나 공화정이 성립되어 있었다. 그러나 1936년에 사회당과 공산당이 손을 잡고 인민 전선 정부를 세우자 우익 세력과 군부는 프랑코 장군을 앞세워 반(反)정부 운동을 일으켰다. 이때 독일과 이탈리아는 프랑코 장군을 원조하고 소련은 정부군을 지원하였다. 결국 반란군이 승리하여 공화정은 무너지고 프랑코의 독재 정부가 수립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