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도 개편의 필요성/관제의 개혁/왕호의 변경과 유교의 수용

[제도 개편의 필요성]

삼국을 통일한 신라는 바깥 세력과 대항하던 힘을 안으로 쏟으면서 정치와 경제 등 모든 면에서 발전을 꾀하였다. 신라는 먼저 넓어진 영토와 새로 아우르게 된 국민들을 잘 다스리기 위해 여러 가지 제도를 개편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이러한 개편은 태종 무열왕을 거쳐 7세기 말인 신문왕 때에 완성되었다.

[관제의 개혁]

1. 왕권의 강화
통일 신라는 먼저 왕권을 강화하였다. 이를 위해 귀족 회의의 장으로서 귀족 세력을 대표하던 상대등의 권한은 약화시키고, 대신 집사성의 장으로서 왕명에 따라 정무를 처리하는 시중이 국무총리 격이 되어 모든 행정을 주관하도록 하였다.

2. 관직의 정비
통일 전부터 설치되어 국방을 맡았던 병부, 나라의 살림을 주관하는 창부, 의례를 주관하는 예부, 관리들의 신분과 계급에 관한 사무를 맡아보는 위화부 외에 공장 관계 사무를 맡아보는 예작부 등을 두어 관청을 정비하였다.

3. 포용 정책
옛 고구려와 백제의 관리들에게도 신분에 따라 각기 알맞은 관직을 주어 통일 신라의 지배 제제 안으로 끌어들였다.

[왕호의 변경과 유교의 수용]

1. 왕호의 변경
이전에는 법흥왕 등 불교식으로 부르던 왕호를 무열왕이나 성덕왕 등 중국식으로 고쳐 부르게 한 것이라든지, 통일 후 무열왕의 직계 자손이 진골로서 왕위를 독차지한 것 등도 모두 왕권이 강화되었음을 뜻한다. 

2. 유교의 수용
신문왕 때에는 왕권의 강화와 중앙 정치 체제의 정비를 위해 유교 정치 이념을 수용하였다. 국학의 설립이나 한학 교육의 장려는 이러한 정책의 하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