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시의 형성과 역할/보부상/공인의 등장

[장시의 형성과 역할]

1. 장시의 형성
자유 상인들의 발달은 지방의 장시에 토대를 둔 것이었다. 18세기 중엽에는 이미 전국에 5일마다 정기적으로 장이 열리는 장시가 1,000여 개나 들어서 있었다.

2. 장시의 역할
지방의 장시는 주로 농산물과 수공업 제품 등을 교환하는 교역의 장소인 동시에 농촌 사회의 사교장이나 오락장 구실을 하였다. 또 소식을 전하는 마당이요, 보부상의 활동 무대였다.

[보부상]

1. 유래
보부상은 원래 보상(봇짐장수)과 부상(등짐장수)을 통틀어 이르는 말로, 조선 초기에는 소규모의 생활 일용 잡화를 가지고 각지로 행상하였다. 하지만 조선 후기에 들어와서는 각 지방의 장시를 돌면서 활발한 상업 활동을 펼쳤다.

2. 보부상의 조직
보부상들은 자신들의 이익과 단결을 위해서 보부상단이라는 조직을 만드는 한편, 지위 향상을 위한 노력도 하였다.
 
[공인의 등장]

대동법의 실시로 나타난 공인은 조선 후기 상업 활동의 중심이 되었다.

1. 공인의 역할
공인은 관청과 결탁한 상인으로, 국가에서 필요로 하는 물품을 전국 각지에서 사들여 관청에 납품하고 대가를 받았다.

2. 공인의 활동과 상업의 발전
공인은 서울의 시전과 지방의 장시를 중심으로 활동하면서 특정 물품을 대량으로 취급해 많은 이익을 보았으며, 독점적인 도매 상인으로 성장하였다. 또한, 수공업자에게 주문 생산을 하기도 했는데, 이들의 활동으로 조선 후기의 상업과 수공업은 크게 발전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