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리학의 발전 과정/성리학의 특성/성리학에 대한 반성과 비판/실학과 서학 연구

[성리학의 발전 과정]

조선 전기의 학문은 성리학을 중심으로 한 학문이다. 고려 말 안향에 의해 중국에서 전해진 성리학은 여러 학자들의 노력으로 조선 전기에 이미 학문적 위치를 굳혔다. 그 후 성리학은 명종과 선조 때에 이황과 이이 등 뛰어난 학자들의 연구에 힘입어 조선 성리학으로서 독자적인 위치를 굳혔다.

[성리학의 특성]

1. 성리학의 배타적 성격
당시의 학자들은 벼슬을 하면서 학문을 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이들 학자들은 성리학에 너무 열중한 나머지, 성리학만이 옳고 그 밖의 다른 학문은 모두 그르다는 배타적 정신을 지니고 있었다. 이 때문에 불교는 물론 같은 유학 계통이지만 흐름이 다른 양명학마저도 배척하였다.

2. 실용 학문 천시
성리학자들은 기술학도 천한 것으로 여겨 학교에서 교육하지 않고, 기술학을 필요로 하는 관청(호조, 전의감, 관상감, 사역원 등)에서 교육하게 함으로써 자유롭고 실용적인 학문의 발달을 방해하였다.

[성리학에 대한 반성과 비판] 

1. 왜란와 호란 이후의 사회 변화
성리학적 학문 활동에 대한 반성과 비판이 일어나기 시작한 것은 왜란과 호란을 겪고 나서부터이다. 기존의 성리학은 왜란과 호란으로 파괴되고 혼란한 사회를 재건하고 바로잡기에 적합하지 못하였다. 즉, 자유로운 학문 활동을 억누르고, 이론과 생각의 깊이만을 내세우는 성리학은 현실의 어려움을 타개해 나가는 데 도움을 줄 수 없음을 깨달았다.
 
2. 정여립과 정인홍
성리학을 비판하면서 정치와 문화를 혁신하려는 움직임은 이미 16세기 말에 일부 동인 세력 가운데서 일어났는데, 대표적인 인물이 선조 때의 정여립과 광해군 때의 정인홍이다.

[실학과 서학 연구]

16세기 말부터 시작된 새로운 문화 움직임은 이후 학술과 종교, 철학, 문학, 예술 등 모든 문화 영역에 걸쳐 일어났다. 이 가운데 학술 분야에서 나타난 새로운 학풍이 실학이다. 또 실학과 더불어 서양 학문인 서학을 연구하는 새로운 움직임도 서서히 고개를 들기 시작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