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에 대비하여 거북선을 고안/옥포 해전의 승리/사천 해전과 당항포 해전/한산도 대첩/거듭되는 승리/이순신 장군의 승리가 임진왜란에 끼친 영향

[전쟁에 대비하여 거북선을 고안]

임진왜란이 일어나기 1년 전에 전라 좌도 수군절도사에 임명된 이순신은 왜군이 곧 쳐들어올 것이라 판단하여 전쟁에 쓰일 배를 만들고 군사들의 훈련을 강화하였다. 이와 함께 거북선을 고안해 나대용 등으로 하여금 만들게 하였다. 이 거북선은 배 위에 거북의 등 같은 뚜껑을 덮어 적의 화살과 총탄을 막을 수 있도록 하고, 선체 주위에는 포구를 만들어 적을 공격할 수 있도록 만든 장갑선이다.

[옥포 해전]

왜적의 침입에 대항하여 이순신은 전라 우도 수사 이억기와 연합 함대를 조직하였다. 그리하여 80여 척의 배를 거느리고 거제도 동쪽 해안 옥포에서 적선 50여 척을 맞아 싸워 그중 26척을 쳐부수는 첫승리를 거두었다. 이 싸움이 옥포 해전이다.

[사천 해전과 당항포 해전]

1592년(선조 25년) 5월에 전라 우수영 및 경상 우수영 함선과 합세해 사천(지금의 삼천포)에서 처음으로 거북선을 씀으로써 적선 12척을 전멸시켰다. 이어 당항포 해전에서 두 차례에 걸쳐 약 60척의 왜선을 격파하는 대승을 거두었다. 이 두 차례 해전의 승리로 우리 수군의 사기는 하늘을 찌를 듯하였고, 왜군의 수륙 병진 작전(육지와 바다를 동시에 공격하는 전략)은 완전히 꺾이게 되었다.

[한산도 대첩]

해전에서 크게 패한 왜군은 모든 함선을 다시 모아 총공격을 개시하고, 육지에서도 전라도 지방을 공격하게 함으로써 우리 수군의 후방을 어지럽히고자 하였다. 그러나 이순신의 연합 함대는 육지의 백성들과 긴밀한 연락을 취하면서 적의 함대를 한산도 앞바다 넓은 곳으로 꾀어 내어 일본의 함선 47척을 격침시키고 12척을 나포하였다. 이 해전이 임진왜란 3대첩의 하나인 한산도 대첩이다.

[거듭되는 승리]

의주 피란지에서 계속되는 승리 소식을 전해 들은 선조는 정헌대부의 직위를 내려 주며 이순신의 공을 치하하였다. 이듬해 이순신은 전라·충청·경상의 3도 수군을 총지휘하는 삼도 수군통제사가 되었다. 한산도 대첩 후 우리 수군은 계속해서 승리를 거두어 세계 해전 사상 보기 드문 큰 전과를 거두었다.

[이순신 장군의 승리가 임진왜란에 끼친 영향]

거듭되는 승리로 우리 함대는 남해의 해상권을 완전히 장악하고, 침략하는 왜군의 연락 및 보급로를 가로막았다. 나아가 황해로 침범하려는 왜군의 야심을 물리침으로써 곡창 지대인 호남 지방의 군량을 확보하고 백성을 보호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