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삼국 혼란기의 국내외 정세/신라의 멸망/후백제의 멸망과 후삼국의 통일

[후삼국 혼란기의 국내외 정세]

우리나라에서 후삼국이 서로 다투고 있을 무렵 중국에서는 당나라가 망하고, 화북에 다섯 나라가 번갈아 세워지는 5대 10국의 혼란기를 맞이하였다. 그리고 만주 서부에서는 거란이 일어나 926년에 발해를 멸망시켰다. 이와 같은 복잡한 국제 관계 속에서 후백제와 후고구려는 서로 상대방을 견제하기 위해 중국 세력과 손을 잡고 발전을 꾀하였다.

[신라의 멸망]

1. 고려의 친신라 정책
후백제와 후고구려의 세력에 눌려 힘을 못 쓰던 신라는, 고려가 일어나자 재빨리 고려의 친신라 정책을 받아들여 고려와 손을 잡았다.

2. 후백제의 침입
후백제와 고려의 세력 다툼이 심해짐에 따라 견훤은 고려와 손잡은 신라를 보복하기 위해 경주에 침입하여 약탈을 일삼았다. 반면에 왕건은 스스로 군사를 이끌고 견훤과 싸우는 한편, 신라의 금성(지금의 경주)을 방문해 신라인으로부터 부모와 같다는 칭찬을 들었다.

3. 신라의 항복
후백제의 침입을 계기로 신라의 무력함이 드러나고, 민심도 고려로 기울자 경애왕의 뒤를 이은 경순왕은 결국 935년에 나라를 고려에 넘겨 주었다.

[후백제의 멸망과 후삼국의 통일]

후백제에서도 내분이 일어나 견훤의 아들 신검이 견훤을 금산사에 가두고 왕위에 오르는 사건이 일어났다. 이에 견훤은 금산사에서 몰래 빠져나와 고려에 항복하였다. 이러한 상황을 이용하여 고려는 후백제를 크게 격파함으로써 후백제도 936년에 무너지고 말았다. 이로써 후삼국의 혼란은 끝이 나고 고려에 의해 한민족은 다시 통일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