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별초의 반몽 정권 수립/진도와 제주도에서의 항쟁/삼별초 항쟁의 의의

[삼별초의 반몽 정권 수립]

1. 개경 환도 거부
최씨 무신 정권의 핵심 병력으로 몽골과의 항전에서 가장 용감하게 싸운 삼별초는 정부의 개경 환도를 몽골에 대한 굴욕적인 항복이라 하여 따르지 않았다. 이어 1270년에 배중손의 지휘 아래 강화도에서 반기를 들었다.

2. 반몽 정권 수립
삼별초는 먼저 강화도와 육지와의 교통을 끊었다. 그리고 왕족인 승화후 온을 받들어 새로 관청을 설치하고 관리도 임명하여, 개경의 정부와 대립하는 반몽 정권을 수립하였다.

[진도와 제주도에서의 항쟁] 

1. 진도에서의 항쟁
(1) 개경이 가까운 강화도에서 오래 버틸 수 없었던 삼별초군은 전라남도 진도로 근거지를 옮겼다. 진도에 진을 친 삼별초군은 궁성을 짓고 도읍 시설을 갖추는 한편, 격문을 발표해 국민들의 항몽 의식을 북돋우었다. 이에 따라 많은 국민이 모여들면서 부근의 여러 섬과 해안 일대를 지배해 하나의 해상 왕국을 이룩하였다. 
(2) 삼별초의 세력이 강해지자 정부는 고려와 몽고 연합군을 조직한 뒤 진도를 공격하였다. 결국 1271년에 진도는 함락되었다.

2. 제주도에서의 항쟁
진도가 함락되면서 삼별초군은 중심 인물을 대부분 잃었다. 나머지 세력은 김통정의 지휘 아래 제주도로 옮겨 가 항쟁을 계속하였다. 그러나 이미 중심 세력을 잃은 삼별초군은 오래 지탱할 힘이 없었다. 결국 1273년에 고려와 몽고 연합군에 의해 제주도가 함락됨으로써 전후 4년간에 걸친 삼별초의 대몽 항쟁은 끝이 났다.

[삼별초 항쟁의 의의]

삼별초의 항쟁은 비록 뜻을 이루지는 못하였으나 몽골에 대한 고려 무인들의 항쟁 의식을 보여 준 대표적인 사례로 꼽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