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권 강화/한양 천도/사회 제도의 개혁

[왕권 강화]

태종은 왕위에 오르기 전, 제2차 왕자의 난이 끝나고 왕세제로 책봉된 직후부터 왕권 강화를 위한 조치를 취하였다. 먼저 왕위 쟁탈전이 사병(私兵)을 기반으로 한 무력 충돌로 일어난 점을 생각해 일체의 사병을 철폐하였다. 그 대신 왕의 권한을 높이고 국가의 상설 군대를 강화해 국방을 튼튼히 하는 한편, 지방 귀족의 반란을 막았다.

[한양 천도]

태종은 왕위에 오른 후 다시 서울을 한양으로 옮기고 한양 성벽을 쌓는 한편, 하수 시설로 청계천을 팠다. 그리고 종로 양쪽에는 행랑이라는 상가를 짓고, 창덕궁과 경회루 등 궁궐도 지었다.

[사회 제도의 개혁] 

태종은 국가의 모든 제도뿐만 아니라 백성들의 생활 방식과 의복, 주택에 이르기까지 일일이 관심을 기울였고, 좀 더 나은 방법을 연구하도록 새로운 기구를 설치하였다.

1. 호패법 실시
호패법은 16세 이상의 남자에게 호패를 지니고 다니게 하던 제도로, 전국의 인구 동태를 파악해 세납과 군역의 의무 부과에 활용하였다. 또한, 떠도는 유민들을 한곳에 정착시켜 농업을 장려하고, 비상시를 위한 인적 자원을 확보하였다.

2. 서얼 차별 제도 
서얼차대로 본부인의 아들이 아닌 사람에게는 벼슬을 하지 못하게 하는 차별 제도를 실시하였다.

3. 사찰 정리
(1) 사찰을 정리하고 절에서 부당하게 많이 차지하는 토지를 빼앗아 관에서 관리하도록 하였다.
(2) 도참설(음양오행설에 의해 인간의 길흉화복을 예언하던 학설)에 관한 책을 모조리 불태워 허무맹랑한 소리가 나돌지 않도록 하였다.

4. 사법과 행정 제도 정비 
(1) 태종은 모든 법전을 정리 편찬해 사회 기강을 바로 세우게 하고, 의정부를 설치해 법도가 옳게 펴지고 있는가를 감시 지도하게 하였다.
(2) 행정 기관인 6조의 기능을 강화하고 전국을 팔도로 나누어 조선 왕조의 기본적인 행정 구역을 확립하였다.

5. 유학의 진흥과 인재 양성
유학을 장려해 성균관 외에 서울에 동·서·남·북·중의 5부 학당을 세워 유학 진흥과 인재 양성에 힘쓰는 한편, 구리 활자인 계미자를 만들어 서적을 많이 찍어 냈다. 그 밖에 아악서를 두어 음악을 연구하게 하는 등 재위 18년 동안 잠시도 쉬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