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조의 건국 이념과 훈요 10조/민생 안정과 북진 정책/민족 융합 정책/숭불 정책

[태조의 건국 이념과 훈요 10조]

1. 건국 이념
후삼국을 통일한 태조 왕건은 안으로는 민족의 융합을 꾀해 나라의 기반을 튼튼히 하고, 밖으로는 고구려의 옛 땅을 회복하기 위한 북진 정책을 건국 이념으로 삼았다. 이러한 태조의 건국 이념은 '훈요 10조'에 잘 나타나 있다.

2. 훈요 10조
훈요 10조는 태조가 뒷날 왕이 될 자손들이 지켜야 할 바를 명시한 것으로, 불교를 숭상하고 거란과 사귀지 말라는 등의 내용이 담겨 있다. 태조는 이 밖에도 신하들이 받들어야 할 규범으로 <정계>, <계백료서>를 지어 널리 퍼뜨려 알게 하였다.

[민생 안정과 북진 정책]

1. 민생 안정 정책
태조는 즉위 후 먼저 민생을 안정시키는 데 힘썼다. 후삼국 분열기의 와중에 무질서해진 토지 제도를 바로잡고, 조세는 10분의 1세를 적용해 법에 따라 거두도록 하였다.

2. 북진 정책
(1) 고려는 고구려를 계승한 나라답게 고구려 옛 땅을 회복하고자 적극적인 북진 정책을 추진하였다. 평양을 서경이라 하여 북방 정책의 기지로 삼았고, 교류를 청해 오는 거란에 대해서는 발해를 멸망시킨 짐승과 같은 나라라 하여 배척하였다.
(2) 북진 정책의 결과 태조 말년에는 서쪽으로 청천강 하류에서 동쪽으로 영흥 지방에 이르는 넓은 땅을 되찾았다.
(3) 북진 정책은 뒷날 거란이나 여진, 몽골 등 북방 민족과의 사이에 충돌을 일으키는 원인이 되기도 하였지만, 고려는 그 뒤에도 계속 북진 정책을 기본 정책으로 삼았다.

[민족 융합 정책]

태조는 당시 각 지방에서 커다란 세력을 형성하고 있던 호족을 포섭하고, 고구려 계통의 발해 유민을 받아들이는 등 민족 융합 정책을 폈다.

1. 혼인 정책과 기인 제도
(1) 호족 세력을 포섭하기 위해 태조는 여러 호족 집안과 혼인 관계를 맺고, 지방 호족들의 자제를 서울에 볼모로 데려와 있도록 하는 기인 제도를 실시하였다.
(2) 기인 제도는 신라의 상수리 제도를 계승한 것으로, 지방 호족 세력을 견제하는 수단으로 이용되었다. 

2. 사심관 제도
호족 융합 정책의 일환으로 신라의 경순왕을 비롯해 중앙의 높은 관리들을 출신 지방의 사심관으로 임명하는 사심관 제도를 실시하였다. 태조가 <정계>, <계백료서> 같은 책을 지은 것도 이러한 정책을 위해서였다.

3. 인재 등용
태조는 유능한 인재라면 그가 신라인이건 백제인이건 가리지 않고 벼슬을 주었다. 

[숭불 정책]

종교 면에서도 관대한 정책을 펴 불교와 유교를 장려하고 풍수지리설까지 숭상하였다.

1. 사찰 건축
특히 불교를 중히 여겨 국가의 정신적 지주로 삼고 여러 곳에 절을 지어 국가와 왕실의 번영을 빌도록 하였다. 부처의 은덕을 빌려 국가의 안정과 발전을 바라는 이 호국 불교 사상은 이후 고려 사회에 큰 영향을 끼쳤다.

2. 승려 우대와 불교 행사 개최
승려들에게는 국사나 왕사의 칭호를 내려 우대하고, 신라 때부터 행해지던 연등회, 팔관회 등의 불교 행사도 더욱 장려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