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화도 천도와 몽고의 침입/대몽 항쟁

[강화도 천도와 몽고의 침입] 

1. 강화 천도
강화를 맺고 물러간 몽고가 무리한 조공을 요구해 오자, 최우는 대몽 항전을 결심하고 바다 싸움에 약한 몽골군의 약점을 이용하기 위해 강화도로 서울을 옮겼다. 

2. 몽고의 침입
고려의 이러한 적극적인 항전 태세는 몽고를 자극하여, 몽고는 살리타를 보내 다시 고려를 공격하였다. 살리타는 개경을 함락하고 남경(지금의 서울)을 거쳐 한강 이남까지 내려왔다. 그러나 고려의 승려 김윤후가 살리타를 살해하자, 몽고군은 사기를 잃고 북쪽으로 물러갔다.

[대몽 항쟁] 

몽고는 금을 멸한 뒤에도 자주 고려에 침입하였다. 하지만 그때마다 우리 민족은 온갖 어려움을 무릅쓰고 항전하였다.

1. 대장경 간행
부처의 힘을 빌려 어려움을 이겨 내고자 대장경 간행 계획을 세워 팔만대장경판을 새기기도 하였다. 

2. 백성들의 항전
최씨 정권도 굳세게 항전하였지만, 백성들이 적극적으로 투쟁에 참여하였다. 특히 사회적으로 천대받던 노비와 천민들까지 용감하게 맞서 싸웠다.

<더 알아보기>

[강화도 천도 후의 생활]

강화도로 천도한 후 귀족들은 개경에서와 다름없이 호화롭고 사치스런 생활을 하였다. 바닷길로 안전하게 수송되어 온 조세가 이를 뒷받침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육지의 일반 백성들은 몽고의 횡포에 시달려 섬이나 산성으로 들어가야 했으며, 식량 부족으로 인해 굶주림에 시달려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