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의 세력 팽창/영국과 일본의 동맹 체결/러시아의 남진 정책

청일 전쟁과 삼국 간섭 이후 러시아와 일본은 날카롭게 대립하였다.

[러시아의 세력 팽창]

1. 청과 조선에 대한 영향력 행사 
러시아는 일본으로 하여금 랴오둥(요동) 반도를 청나라에 돌려주게 한 뒤, 청과 비밀 협상을 맺어 시베리아 철도가 만주를 통과할 수 있는 권리를 차지하였다. 이어 러시아는 블라디보스토크 항과 뤼순 항을 해상으로 연결하는 해군 기지를 얻기 위해 우리나라의 마산과 목포 등지를 이용하려다 일본의 방해로 실패하였다.

2. 만주 진출
이 무렵 러시아는 만주를 세력 팽창의 주요 기지로 삼고 만주 경영에 열을 올리고 있었다. 때마침 중국에서 외국을 배척하는 사상이 크게 나타나 1900년에 의화단 운동이 일어나자, 러시아는 자국 이익을 보호한다는 구실로 군대를 만주에 출동시켜 주요 지점을 점령하였다. 그 후 의화단 운동이 진압되고 각국의 군대가 철수하였는데, 러시아는 군대를 철수시키지 않고 영구히 만주를 점령할 움직임을 보였다.

[영국과 일본의 동맹 체결]

러시아 세력의 팽창에 대해 민감한 반응을 보인 나라는 영국과 일본이었다.

1. 영국과 일본의 러시아 견제
영국은 이미 청나라에 구축해 놓은 지배적인 지위가 러시아의 만주 진출로 위협을 받게 되었고, 일본은 삼국 간섭 등으로 타격을 받았기 때문이다. 이에 영국과 일본은 1902년에 러시아를 공동의 가상 적국으로 삼는 영일 동맹을 맺었다.

2. 영일 동맹의 주요 내용
영일 동맹의 주요 내용은 일본이 청나라에서 영국의 이권을 승인하는 대신 영국은 조선에서 일본의 특수 권익을 승인하는 것이었다. 또항, 상대국이 제3국과 전쟁을 할 때에는 서로 원조한다는 내용도 들어 있었다.

3. 일본의 군비 확장 
영일 동맹으로 일본의 지위가 강화되었으며, 일본은 군비 확장에 열을 올렸다.

[러시아의 남진 정책] 

러시아는 군대를 만주에 파견하여 봉황성과 안둥 현 일대를 점령하였다. 그리고 1903년 7월에는 중국 만저우리에서 하얼빈을 거쳐 뤼순에 이르는 하얼빈 철도(동청 철도)를 완성하였다. 또한, 압록강 하류의 용암포를 점령하고 거기에 군사 기지를 만들면서 그 조차를 요구하였다.

<더 알아보기>

[용암포 사건]

1903년에 러시아는 압록강 하류의 용암포를 점령하였다. 이어 용암포에 군사 기지를 만들면서 조차권(한 나라가 다른 나라의 땅을 빌려 통치하는 일)를 조선에 요구하였다. 이를 용암포 사건이라고 한다. 그러나 일본과 영국, 미국 등이 조선 정부에 항의해 조차는 이루어지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