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원군의 쇄국 정책] 약 60년간에 걸친 세도 정치로 사회 혼란이 극심할 때, 나이 어린 고종이 즉위하고 아버지인 흥선 대원군이 정권을 잡았다. 흥선 대원군은 흐트…

[대원군의 쇄국 정책] 약 60년간에 걸친 세도 정치로 사회 혼란이 극심할 때, 나이 어린 고종이 즉위하고 아버지인 흥선 대원군이 정권을 잡았다. 흥선 대원군은 흐트러진 국정을 바로잡기 위해서 서원을 철폐하는 등 과감한 개혁 정치를 폈다. 또 그는 서양 세력의 침투를 막기 위해 천주교에 대한 대탄압을 가하고 일본과 서양의 통상 요구를 단호히 거절하였다. 흥선 대원군의 이러한 쇄국 정책으로 프랑스 및 미국과 충돌을 빚기까지 하였다(병인양요·신미양요).

[완전한 문호 개방] 흥선 대원군이 물러나자 메이지 유신으로 자본주의 체제를 갖춘 일본은 '운요호 사건'을 일으켜 재차 통상을 강요해 왔다. 당시 조선에서는 반대론이 우세했으나, 박규수 등 개화파의 주장에 따라 일본과 강화도 조약(1876년)을 맺고 부산 등 세 항구를 열었다. 그 후 조선은 미국·영국·독일·프랑스·러시아 등 여러 나라와 조약을 맺음으로써 완전히 문호를 개방하였다.

[일본의 내정 간섭] 개항 후의 조선은 개화파와 보수파의 갈등, 일본의 경제적 침투, 청의 내정 간섭 등으로 심한 진통을 겪었으며, 1894년에는 대규모의 동학 농민 운동까지 일어났다. 이를 계기로 조선에 군대를 파견한 일본은 청일 전쟁을 일으켜 청나라 세력을 몰아내고 조선의 내정에 간섭해 왔다.

[러일 전쟁과 국권 강탈] 일본은 조선에 대한 지배권을 둘러싸고 러시아와 다시 대립하여 러일 전쟁을 일으키고, 결국 전쟁에 승리함으로써 조선의 지배권을 굳혔다. 조선의 애국지사와 의병들은 일본의 침략에 맞서 피나는 항쟁을 벌였으나, 항쟁의 보람도 없이 일제에 국권을 강탈당하고 35년간이나 식민 통치를 받아야 했다.

[세도 정치] 조선 시대에 왕의 신임을 얻은 신하나 외척이 권력을 잡고 나라를 다스리던 비정상적인 정치 형태이다. 순조·헌종·철종의 3대 60여 년간 안동 김씨와 풍양 조씨가 권력을 잡고 세도를 부렸다.

[동학 농민 운동] 전라도 고부군에서 동학교도들이 중심이 되어 일으킨 농민 운동으로, 갑오 농민 전쟁이라고도 한다. 1894년 외국 세력의 침투와 탐관오리의 횡포가 심해지자, 전봉준의 지도 아래 동학교도와 농민들이 들고 일어났다. 이 혁명은 실패로 끝났지만 우리 역사상 외국 세력에 대한 항쟁과 내정 개혁을 주장하면서 싸운 가장 큰 민중 운동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