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후 이탈리아의 혼란] 제1차 세계 대전 당시 이탈리아는 연합국 측에 가담했으나, 오스트리아 군에게 패배만 거듭하였다. 그래서 파리 강화 회의에서도 발언권이 약했으…

[전후 이탈리아의 혼란] 제1차 세계 대전 당시 이탈리아는 연합국 측에 가담했으나, 오스트리아 군에게 패배만 거듭하였다. 그래서 파리 강화 회의에서도 발언권이 약했으므로 식민지를 별로 차지하지 못하여 불만이 컸다. 원래 자원이 부족한 이탈리아는 전쟁의 피해까지 겹쳐 산업이 매우 부진하고 이에 따라 실업자가 증가하고 노동자들의 파업과 폭동이 끊이지 않았다. 노동자들은 자본가로부터 공장을 탈취하고 농민들은 지주의 땅을 빼앗아 나누어 가지는 등 혼란이 극심하였다.

[무솔리니와 파시스트당] 이러한 사태를 교묘히 이용하여 무솔리니는 정권 장악에 성공하였다. 그는 1919년에 전투자 동맹이라는 행동대를 조직하여 노동 운동을 탄압함으로써 사회 안정을 바라는 중상류 계층과 군부의 지지를 얻었다. 그 후 그는 단체 이름을 파시스트당이라 고치고 국가의 단결과 위대한 이탈리아의 건설을 내세우며 북 이탈리아 일대에서 세력을 확장하였다. 1922년에 무솔리니는 파시스트 전투단을 이끌고 수도인 로마를 향하여 진군했으며(로마 진군), 마침내 국왕으로부터 수상에 임명되었다. 이리하여 정권을 잡은 그는 반대파를 억압하면서 파시스트당에 의한 일당 독재 체제를 구축해 나갔다. 파시스트당은 국가 지상주의를 내걸고 자본주의도 반대했지만 공산주의는 더욱 배격하였다. 

[파시스트당] 1919년에 이탈리아의 무솔리니가 조직한 독재 정당으로 이탈리아의 파시즘을 주도하였다. 처음에는 중소 지주와 기업가들이 참여한 '이탈리아 전투자 동맹'이라고 부르다가, 1921년의 총선거에 진출한 뒤에는 국가 파시스트당을 만들었다. 1924년에는 총선거에서 의회의 과반수를 차지하여, 선거법 개정·테러 등으로 일당 독재 체제를 확고히 했다. 1943년에 무솔리니가 실각한 후 해체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