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의 중국 통일과 원정] 제5대 쿠빌라이 칸은 수도를 카라코룸에서 베이징(대도)으로 옮기고, 국호도 중국식으로 원(元)이라 하였다(1271년). 그는 40년간이나 …

[원의 중국 통일과 원정] 제5대 쿠빌라이 칸은 수도를 카라코룸에서 베이징(대도)으로 옮기고, 국호도 중국식으로 원(元)이라 하였다(1271년). 그는 40년간이나 저항하던 고려를 복종시키고, 남송을 멸하여 전 중국을 통일하였다. 또한 남쪽의 미얀마(파간 왕조)를 정벌하고, 동쪽의 일본에도 원정군을 보냈으나 태풍으로 실패하였다.

[원의 지배 정책과 무역의 번창] 원나라는 중국식 정치 제도를 채용하였으나, 엄격한 민족 차별 정책을 취하여 4계층의 신분으로 나누어 다스렸다. 문무 고관은 제1신분인 몽골인이 독점하고, 다음으로 색목인(외국인)을 우대하여 그들을 보좌하게 하였다. 그리하여 몽골인과 색목인이 지배 계급을 이루어 중국 민족을 다스렸다. 중국인도 다시 두 계층으로 나누어졌는데, 금나라 지배 아래 있던 사람들을 한인(漢人)이라 하여 제3신분으로 삼고, 남송 지배 밑에 있던 사람들은 남인이라 하여 가장 천대하였다. 그러나 몽골 족은 유목 민족이며 소수파였기 때문에 중국 농경 사회의 내부에는 깊이 관여하지 않고, 강력한 무력을 배경으로 세금 징수에만 관심을 기울였다. 그래서 송나라 시대부터의 대토지 소유(지주-전호제)가 계속 발전하여 경제 중심지로서 강남의 비중은 점점 커졌다. 또한 원나라는 수 양제가 건설한 대운하를 더욱 확장하였다. 이것은 강남의 쌀을 수도인 베이징으로 운반하려는 목적에서였는데 이로 인해 지역 간의 물자 교류와 상업의 발달이 촉진되었다. 한편 상업 발달에 따른 국가 이익을 중시하여 교통망을 정비하고 화폐 유통의 원활을 위해 교초라는 지폐도 발행하였다. 이와 같은 상업 보호 정책에 따라 외국 무역도 성하여 항저우·취안저우·광저우 등의 항구 도시가 국제 무역항으로 번창하였다.

[색목인] 원나라 때에 일찍이 몽골 정권에 귀순한 서방계 민족을 일컫는 말이다. 여기에는 위구르·탕구트 등 20여 부족이 포함되어 있다. 색목인은 원나라로부터 몽골 인 다음 가는 준 지배자로서의 특권을 가졌고, 그들은 한인·남인의 피지배민에 비해 모든 면에서 특권과 우대를 받아 정치적·경제적으로 크게 활약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