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나라의 등장과 정강의 변] 12세기에 거란족의 요나라가 쇠퇴해지자, 그 지배 아래 있던 만주의 여진족이 새로운 세력으로 등장하였다. 1115년에 여진족 완안부의 …

[금나라의 등장과 정강의 변] 12세기에 거란족의 요나라가 쇠퇴해지자, 그 지배 아래 있던 만주의 여진족이 새로운 세력으로 등장하였다. 1115년에 여진족 완안부의 추장 아쿠타가 여진족을 통일하고 황제가 되어 금(金)나라를 세웠다. 그리고 요나라를 멸망시키고 이듬해에 다시 송나라에 침입하여 수도 카이펑을 함락시켰다. 이때 송나라 황제인 휘종·흠종 부자(父子)와 많은 귀족·고관들을 사로잡아 갔는데, 이를 '정강의 변'이라 한다.

[남송 시대] 송나라는 정강의 변으로 멸망의 위기에 처하였으나, 휘종의 아들 고종이 강남으로 피해 항저우(임안)를 새 도읍으로 삼아 송 왕조를 재건했다(1127년). 이때부터를 남송이라 하고 그 이전을 북송이라 한다. 남송과 금나라는 남북으로 대립하였는데, 남송 초기에는 악비 같은 장군이 금나라에 빼앗긴 화베이(화북) 지방을 되찾기 위하여 맹렬히 싸웠으나 차츰 진회 등의 평화론이 우세해져 금나라와 조약을 맺고 해마다 많은 금품을 보내 줌으로써 평화를 유지하였다. 이러한 가운데서도 강남 지방의 개발이 촉진되어 경제·문화상에 커다란 발전이 있었다.

[금나라의 쇠퇴] 만주에서 화베이(화북)에 걸치는 대제국을 이룩한 여진족은 남송·서하 및 고려에 대해서도 신하의 예를 취하게 하는 등 크게 위세를 떨쳤다. 또 그들은 여진 문자를 사용하고 그들 고유의 부족 제도를 바탕으로 독특한 군사적 행정 조직을 만들어 통치 체제를 강화하였다. 그러나 문화 수준이 높은 다수의 중국 민족을 지배하는 과정에서 중국 문화에 차츰 동화되어 그들의 굳건한 기풍을 잃고 쇠퇴해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