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티븐슨의 행적과 한국인들의 분노/스티븐슨 저격

전명운와 장인환은 일본의 침략을 옹호하는 스티븐스를 미국에서 저격하였다.

[스티븐스의 행적과 한국인들의 분노]

스티븐스는 을사조약 체결 이후 일본 정부의 추천으로 우리나라에 와서 외교 고문으로 활동한 친일파 미국인이다. 그는 본국에 돌아가 기자 회견을 하면서 한국에 대한 일본의 보호 정치를 극구 찬양하였다. 이 내용이 신문에 보도되자 미국에 살던 한국 동포들은 매우 흥분하였고, 이 가운데 몇 사람은 직접 스티븐스를 찾아가 항의를 하기도 하였다. 

[스티븐슨 저격] 

스티븐스의 발언에 격분한 재미 교포 전명운과 장인환은 미국 오클랜드 역에서 스티븐스를 쏘아 죽이고 현장에서 체포되었다. 체포된 뒤 두 의사는 법정에서도 소신을 굽히지 않고 자신들이 한 일이 나라를 위해 정당한 일이었음을 주장하여 기개를 드높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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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명운] 

1908년 스티븐스를 습격했던 전명운은 이후 일제의 감시를 피해 블라디보스토크로 가서 독립 운동을 벌였다. 그 후 다시 샌프란시스코로 가서 의용군 조직, 군자금 모집 등을 하면서 중국 상하이에 있는 대한 민국 임시 정부의 활동을 지원하였다.

[장인환]

을미사변 때 의병에 가담했다가 1904년 미국으로 건너갔다. 1908년 스티븐스를 저격한 후 체포되었다. 1919년 출옥한 뒤에도 샌프란시스코에서 동포들과 함께 계속해서 애국 활동을 펼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