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스트리아의 유전학자이자 수도사.
[어린 시절] 유전학의 아버지라 불리는 그레고어 요한 멘델은 1822년 7월 22일 오스트리아의 하인첸도르프(지금의 체코 지역)라는 마을에서 태어났다. 소년 멘델은 아버지를 따라 농사일을 거들어야 할 때가 많았다. 과수원은 그에게 있어 좋은 실험실이었다. 그의 아버지는 농사일을 좋아하는 외아들을 훌륭한 농사꾼으로 길러 살림을 잇게 할 생각이었다. 그러나 나이가 많은 한 친구가 자신이 다니는 중학교의 생활을 멘델에게 이야기해 주자, 멘델도 중학교에 다니고 싶어졌다. 그래서 부모님께 중학교에 보내 달라고 졸랐다. 멘델의 재주를 잘 알고 있던 부모는 그가 학문의 길로 나아갈 수 있도록 승낙하였다.
[학교 생활] 학교에 들어간 멘델은 가정교사 생활을 하면서 열심히 공부하였다. 돈이 없어 끼니를 굶는 때가 많았으므로 건강은 아주 나빠졌고, 마침내는 큰 병에 걸려 학교를 쉴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성적이 뛰어났던 그는 무사히 학교를 졸업할 수 있었다. 그가 학교를 졸업하기 2년 전쯤에 아버지는 일을 하다가 다쳐 자리에 눕게 되었다. 그래서 집안 살림은 더욱 어려워졌다.
[수도원 생활] 어려운 가정 형편에도 불구하고 그는 올로모츠(지금의 체코 지역)의 초급 대학에 들어가 가정교사 생활을 하면서 열심히 공부하였다. 학교를 졸업한 뒤 스승의 추천으로 브륀(지금의 체코 브르노)에 있는 성 토마스 수도원에서 그레고어라는 이름을 받고 수도승이 되었다. 수도원에는 음악과 미술 등을 좋아하는 신부들이 여러 사람 모여 있었다. 그리고 과학을 좋아하는 신부도 몇 사람 있어 수도원 뜰은 작은 식물원 같았고 희귀한 식물 표본도 많았다. 1844년에 멘델은 수도원의 명령으로 브륀 신학교에 들어가 종교에 대한 공부를 하였다. 그러는 한편 그는 때때로 다른 학교에 가서 경제학과 과수 재배 등을 배웠다. 1848년 6월에 신학교를 졸업한 그는 사제가 되어 교회로 갔다. 그러나 사제 일은 그에게 별로 맞지 않았다. 그래서 원장은 약 1년 뒤 그를 어떤 학교의 교사로 추천해 주었다.
[교사 생활] 1848년에 유럽 사회는 프랑스, 독일, 오스트리아 같은 나라에서 혁명이 연이어 일어났다. 멘델은 혁명이 끝난 이듬해에 브륀의 남쪽에 위치한 즈나임(지금의 체코 즈노이모)으로 가서 그곳의 김나지움(지금의 중등 과정과 고등 과정을 합친 학교)에서 수학과 어학을 가르쳤다. 그 후 멘델은 다시 브륀으로 돌아와 6년 과정의 국립 실과 학교 교사가 되었다. 그 학교는 그 때까지의 학교들과 달리 새로운 시대에 이바지할 수 있는 사람을 키울 목적으로 과학과 수학을 많이 가르쳤다. 그 학교에는 훌륭한 과학자가 몇 사람 있었는데 멘델은 그들과 가깝게 지내며 과학에 대한 관심을 높여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