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용 기술 연구] 갈릴레이는 과학자로서 실용적인 기술에도 관심을 가졌다. 그는 병기 공장이나 기계 공장 그리고 유리 공장 같은 곳에 직접 나가 기술자들과 가깝게 지…
[실용 기술 연구] 갈릴레이는 과학자로서 실용적인 기술에도 관심을 가졌다. 그는 병기 공장이나 기계 공장 그리고 유리 공장 같은 곳에 직접 나가 기술자들과 가깝게 지내며 자기의 새로운 과학에 대해 이야기해 주었다. 그리하여 그는 베네치아 공화국에서 없어서는 안 될 과학자가 되었고 시민들도 그를 좋아하였다.
[피렌체로 떠난 갈릴레이] 1610년, 갈릴레이는 피렌체의 토스카나 대공의 편지를 받고 베네치아 공화국을 떠나 피렌체로 갔다. 토스카나 대공은 편지를 통해 자기 곁에서 마음놓고 연구하면서 자기 아이들도 가르쳐 달라고 청했다. 당시 갈릴레이는 가족들의 생활을 좀 넉넉하게 해 주고 싶었고 자신도 오직 연구에만 몰두하길 원하였다. 비록 피렌체에는 자기의 새로운 학문을 반대하는 사람이 많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지만, 그는 진리 탐구에만 몰두하면 별일이 없을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또한 로마 교황청에 제자들이 많이 있으므로 만일의 경우에는 힘이 되어 줄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갈릴레이와 교황청] 당시 피렌체의 보수적인 학자들은 아리스토텔레스의 학설이 옳지 않다고 주장하는 갈릴레이를 몹시 싫어하였다. 교회의 신부들 중에도 성경에 반대되는 학설인 지동설(태양 중심설)을 주장하는 갈릴레이를 '기독교의 권위를 더럽힌 자'라고 하며 배척하였다. 갈릴레이를 존중하던 교황청 사람들도 갈릴레이와 피렌체의 과학자들 사이에 논쟁이 일자 가만히 보고만 있을 수가 없었다. 그들은 의논한 끝에 1616년 지동설은 성경의 가르침에 맞지 않는 학설이므로 그것을 가르치거나 퍼뜨려서는 안 된다는 법령을 만들고 갈릴레이에게도 그 사실을 전하였다. 신앙심이 깊었던 갈릴레이는 교황의 명령을 거역할 수 없어 그 뒤 몇 년 동안은 천문학 이외의 과학 공부에만 열중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