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업의 발달/혈연 중심 사회/빈부의 차이 발생/고인돌과 돌널무덤

[농업의 발달]

청동기 시대가 되면서 본격적으로 농업이 발달하였다.

1. 농기구과 재배 작물
돌도끼, 흠자귀, 돌괭이, 나무로 만든 쟁기를 이용해 밭갈이를 하고, 조·수수·보리·콩 등을 재배하였다. 일부 지방에서는 벼농사도 행해졌다.
 
2. 농사 관련 유물
(1) 경기도 여주군 흔암리와 충청남도 부여 송국리의 집터에서 발견된 탄화 곡식과 천안 부근의 민무늬 토기 유적, 부산 아치섬의 조개더미에서 발견된 볍씨 자국이 있는 토기, 그리고 여러 지역에서 발견되는 반달 돌칼과 홈자귀(유구석부) 등을 통해 당시 농업이 발달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2) 반달 돌칼은 곡식의 이삭을 자르는 데 쓰였고, 홈자귀는 땅을 가는 데 쓰였다.
(3) 이 시기에도 아직은 돌로 만든 농기구를 사용했고, 청동기는 주로 장신구·무기·제사 용기 등을 만드는 데 쓰였다.

[혈연 중심 사회]

1. 족장의 세력 강화
청동기 시대에는 농업의 발달과 사회 발전에 따라 씨족 사회 내부에 변화가 생겨 족장들의 세력이 강해지기 시작하였다.

2. 공동체 사회 붕괴
청동으로 만든 칼이나 창으로 무장한 부족들은 이웃 부족을 정복하고 그들로부터 공납을 받아들였다. 이에 따라 종래의 공동체 사회는 무너지고 혈연 중심의 사회가 발전해 지역 단위 생활을 하게 되었다.

[빈부의 차이 발생]

청동기 시대에는 개인이 재산을 소유하게 되면서 빈부의 차이가 생겨 씨족 구성원 사이에 지위의 구별이 생겼다.

[고인돌과 돌널무넘] 

우세한 부족은 스스로 하늘의 아들이라고 믿는 선민 사상을 가지고 거대한 고인돌이나 돌널무덤을 만들고 선돌(입석)을 세우기도 하였다. 고인돌은 한반도와 랴오둥 반도에 걸쳐 널리 발견되고, 돌널무덤은 한반도와 만주·몽골은 물론 멀리 바이칼 호 부근까지 분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