훈련도감의 설치/5군영의 설치/속오군의 편성/조선 후기의 군사 제도

왜란과 호란을 겪는 과정에서 국방력이 허술했다는 것이 드러나 군사 제도의 개편이 시급해졌다.

[훈련도감의 설치]

1. 5위제의 붕괴
조선 초기에 정비되었던 5위제는 왜란을 당하면서 여지없이 무너져 버렸다. 그리하여 임진왜란 중에 군제의 개편 작업이 이루어졌다.

2. 훈련도감의 설치와 사수병의 양성
(1) 먼저 훈련도감을 설치하고, 포수(총병)와 사수(궁병), 살수(창검병) 등 삼수병(三手兵)을 양성하였다.
(2) 훈련도감은 중앙의 핵심 군영 역할을 하면서 수도 방어의 책임을 맡았다. 훈련도감은 1882년(고종 19년)에 폐지될 때까지 조선 왕조의 가장 중요한 군영 역할을 하였다. 

[5군영의 설치]

1. 왜란 이후 군영 설치 
왜란 이후에는 여러 군영이 차례로 설치되어 숙종 초기에는 훈련도감을 비롯해 5군영이 편성되었다.

2. 5군영의 설치 과정
(1) 1624년(인조 2년)에는 이괄의 난을 계기로 총융청을 설치하여, 남양과 수원, 장단 등 3진을 관할하게 하여 서울의 수비를 강화하였다. 그리고 수어청을 두어 경기도 광주와 그 부근의 경비를 맡도록 하였다. 
(2) 1652년(효종 3년)에는 어영청을 두었고, 1682년(숙종 8년)에 금위영을 설치함으로써 훈련도감을 포함한 5군영 체제가 완성되었다.

[속오군의 편성]

1. 구성
지방에서는 양반에서부터 천민에 이르기까지 신분에 상관없이 모두 뽑아 속오군을 편성하였다.

2. 특징
속오군은 농한기에 한해 훈련에 참가하다가 유사시에만 전투에 나가는 군대로서, 왜란과 호란 이후 지방군의 주축을 이루었다.

[조선 후기의 군사 제도]

조선 후기에는 훈련도감을 비롯한 중앙의 5군영과 지방의 속오군이 핵심 군대로 등장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