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学,就是用语言塑造形象反映社会生活,又用极强烈的感染力影响社会生活。我们为具备一定阅读基础的童鞋准备的韩国文学名作大餐,希望大家提高阅读的同时,感受这些文学作品中的优美文字感情和艺术表现手法。

화무십일⑥  — 이문구
花无十日⑥  — 李文求

너무도 뜻밖의 놀라운 사실을 발견한 것은, 영문을 몰라 모자가 얼굴만 마주한 채 어쩔 바를 몰라할 어름이었다. 솔이네 방에서 생전 처음 듣는 사내의 음성이 새어 나온 것이다. 굵고 우악스런 사내의 음성이었다.
发觉那件出人意料的惊人事实,是在我们母子莫名其妙地面面相觑不知所措的节骨眼儿上。绍儿一家住的房里透出我们从没听过的男人的嗓音。是一个粗重而鲁莽的男性嗓音。

게다가 겹쳐 더욱 놀랍던 것은, 그 음성의 주인이 윤 영감의 아들, 곧 솔이 아버지라는 점이었다. 그것은 오고 가는 말투만으로도 미루어 단정하기 넉넉한 일이었다. 어떻게 된 셈일까. 이해를 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동안 내내 듣고 보도 못한 솔이 아버지가 갑자기 나타난 것이 그렇고, 그로 인해서 집안이 시끄러워진 내막이 그랬다.
更令人吃惊的是这嗓音的主人正是尹老头儿的儿子,也就是绍儿的爸爸。这一点仅从对话的口气里就足以推测出来。究竟怎么回事啊?根本无法理解的事。这段时间来一直没听过也没见过的绍儿他爸,突然间冒出来,而且为此家里也乱起来了,这些内幕都令人纳闷。

여태 혼자 떠돌아다니다가 방금 찾아 들어온 모양이었다. 엿들어보니 모자 간에 말다툼이 벌어진 셈이었다. 언쟁의 동기는 솔이 엄마의 여관 종업원이었다. 그날 밤 그녀는 아무 기별조차 없고 집에 들어오지 않았던 것이다. 그것도 뜻하지 않는 일이었다.
看样子他一直在外面晃荡,这才回来。仔细偷听,好像母子之间发生了口角。争吵的起因是绍儿的妈妈在旅馆当服务员。那天晚上她连句话也没捎过来就没归家。这是出乎预料的事。

이튿날 솔이 할머니가 안방으로 건너와서 어머니한테 털어놓고 들려 준비밀은, 우릭 예상했던 바를 송두리째 뒤집는, 여간내기가 아니고서는 하기도 어려울 일들이었다.
第二天,绍儿的奶奶找到里屋向妈妈和盘托出的秘密,整个颠覆了我们原先的预料,一般人很难做出这种事。

이름은 학로(學老), 이제 스물여섯 살, 단산할 나이에 맏자식으로 얻고 그만이었던 외아들로서 세 식구가 1.4후퇴 때 함께 월남한 터였다. 솔이 할머니는 목이 메어 간신히 말을 이어가고 있었다. 그네들은 내내 밤으로만 걸어다녀야 했다. 허우대만 그럴싸하면 덮어놓고 잡아다가 군인을 만들던 판이라 그러지 않을 수가 없었다.
名叫学老,今年二十六岁,是老夫妇快到绝育年龄才得到的大儿子也是独生子。那是三口人在1·4后退[1]时一起来到南边的时候。绍儿奶奶的嗓子哽咽了,好容易把话续下来。他们每天只能晚上出来赶路。因为那时只要遇上身材差不多的人,就一律掀翻在地抓回去当兵的乱世,不得不夜里赶路。

그녀는 장가도 못들인 외아들을 어떻게 전쟁터에 보낼 수 있었겠느냐고 말했다. 그래서 낮에는 늘 가마니 속에 담아두지 않으면 안 되었다. 부득이 대낮에 이동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경우에는 영감이 가마니에 담은 아들을 지게로 져날라야 했다. 허리가 부러지게 지고 다닌 거였다.
你说连媳妇都没娶的独生子,哪能让他去战场上呢。所以白天不得不让他整天藏在草袋子里。不得已必须白天移动的时候,老头儿得用背架背着草袋中的儿子赶路,走得腰都快断了。

솔이 엄마를 며느리로 맞게 된 것은 임진강을 건넌 직후였다. 부모를 따라 함께 도강은 했으나 폭격이 한 차례 거쳐간 뒤로 고아가 되어버린, 두고 보기가 딱한 처녀를 길에서 만났던 것이다. 그 처녀는 사지가 발겨진 채 고드래떡으로 굳은 부모 시체를 땅바닥에 뒹굴리며 하염없이 몸부림을 치고 있었다.
娶进绍儿妈当儿媳妇,是在刚刚渡过临津江之后。在路上遇到了一个让人目不忍睹的凄惨的少女——本来跟着父母过了江,一阵炮击过后就成了孤儿。这个少女坐在四肢断裂、冰块般僵硬的父母尸体旁顿足捶胸地嚎啕。

그 정경을 몰라라 하고 그대로 지나치지 못한 그들이 주검을 묻어 주고 동행이 됨으로써 이루어진 혼사였다. 그들은 함께 경북 군위읍까지 피난살이를 옮겨갔었다. 학로가 그녀와 보리죽을 먹고 초야를 치른 것은, 이슬이 달빛처럼 부스러져 내리던 어느 밀밭 고랑이었다. 두 늙은이는 그 일을 몹시 기특하게 여겼다. 그들은 많은 것을 기대했고, 젊은것들을 세상에 없어하며 상전 받들 듯이 했다.
他们无法装作看不见这情景,上前帮忙掩埋了尸体并且一起上了路,后来成了婚事。他们一起来到庆尚北道军威邑避难。学老跟她喝了大麦粥后过的初夜,是在清霜如月光般散落的某个麦田垄沟。两位老人觉得这事非常了不起。他们产生了很多的期待,并且世上少有的像侍候主人一样服侍两个年轻人。

“이리 될 줄이야 누구레 생각이나 해 봤갔시오….”솔이 할머니는 그 대목에 이르자 한 차례 눈물까지 지었다. 부모를 어렵게 알고 매사에 순종하던 아들이 날이 갈수록 거칠어가던 것이다.
“谁能料到会到这步田地呀……­”绍儿的奶奶说到节骨眼儿,淌了一回眼泪。本来敬畏父母,凡事都很顺从的儿子,一天天变得粗鲁起来了。

부모를 업신여기고 언사가 거칠어졌으며, 그들 내외의 금실도 악화일로였던 것이다. 유리걸식을 하던 비참한 처지에서도 그랬고, 솔이가 생긴 뒤에도 그랬다.
蔑视父母,言辞粗鲁起来,也使老夫妻的琴瑟关系也一路恶化起来。流离乞食的悲惨遭处境中也一样,有了绍儿以后也一样。

“쯧쯧…부자 쌍내외가 한 방에서 복작댔으니 여북했겠수.”더 듣지 않고도 어머니는 모든 것을 이해하겠다는 표정이었다.
“啧啧……父子两对夫妻挤在一个房里,有多难呐。”妈妈一副不用再听下去就已经什么都明白了的表情。

학로라는 사내가 문밖을 얼씬 않고 송장처럼 이불을 뒤집어쓴 채 방구석에만 처박혀 두더지 시늉한 까닭이, 다만 병역 기피를 위함이었음도 우리는 그제서야 알았지만, 그는 방에서 물수건으로 세수를 했고, 뒷간도 어두워진 뒤에나 출입했다는 거였다.
我们这才弄明白这个名叫学老的男子不出房门一步,像死尸一样盖着被子躺在屋子旮旯里学鼹鼠,只是为了逃避兵役。他在房里用湿毛巾擦脸,天黑以后才去厕所。

누가 들어도 기막힐 일이었다. 그런 일이 있고도 사흘이나 지나서야 우리 식구는 처음으로 솔이 아버지의 얼굴을 구경할 수 있었다. 그 스스로 자청해서 안으로 인사를 왔던 것이다.
听了都会觉得匪夷所思。发生那件事以后又过了三天,我们才得以一睹绍儿爸爸的脸。他自己主动找到里屋来问安了。

봉두난발에 고슴도치처럼 자란 수염은 아무리 잘 보려 해도 사람꼴이 아니었다. 얼굴은 뜨다못해 허옇게 세어 있었으며, 여리기 나무젓가락만한 손가락은 하들하들 떨리고 있었다. 무척 양순하고 조심성 깊은 청년인 듯하면서도, 잔뜩 지르숙은 고개 밑으로 곁눈질하는 꼴은, 어지간히 융통성 없고 소갈머리 좁은 얼뜨기 같기도 했다.
披头散发加上刺猬一样的胡须,怎么往好了想也觉得不像个人。脸庞浮肿到发白,像细木筷子一般的手指一个劲儿颤抖。既像一个无比温顺而且小心谨慎的青年,低垂下头斜视别人的神态,又像一个相当没有灵活性而且心胸狭窄的木头人。

질서다소 잡혀, 가호적 이나 기류계가 없이는 징집영장도 안 나오기에. 이제는 신분을 공개해도 무방할 것 같아 드디어 햇볕아래에 나서기로 결심했다는 거였다. 그 후로도 솔이네의 가정 불화는 그칠 날이 없었다. 솔이 어머니의 외박이 잦아졌던 것이다. 일에 바빠 하다 보면 통금에 걸려 못 들어온다던 것이 그녀의 변명이었는데, 학로는 그것이 절대로 용서할 수 없는 일이라던 것이다.
社会秩序多少恢复了一些,没有户籍或暂住证就不会收到征兵令,所以他觉得现在公开身份也无妨,终于决心站到阳光下了。从那以后,绍儿一家的家庭矛盾一直持续不断。主要是因为绍儿妈在外过夜的次数频繁起来。绍儿妈的解释是,活儿多干到很晚碰上宵禁所以没能回家,可是学老绝对不能原谅。

그러므로 학로가 의처증에 시달린 것도 당연했는지 몰랐다. 문제는 나날이 복잡하고 어려워져 갔다. 솔이 엄마의 알 수 없는 태도 때문이었다.
因此学老饱受疑妻症的折磨也许是想当然的事。问题一天天变得复杂和困难。主要是因为绍儿妈的让人猜不透的态度。

 词 汇 学 习

군인:军人。 

그 사람은 매우 군인 답습니다.
那个人不愧为一名军人。

 点击查看更多此系列文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