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学,就是用语言塑造形象反映社会生活,又用极强烈的感染力影响社会生活。我们为具备一定阅读基础的童鞋准备的韩国文学名作大餐,希望大家提高阅读的同时,感受这些文学作品中的优美文字感情和艺术表现手法。

화무십일③  — 이문구
花无十日③  — 李文求

마을 사람들도 남의 일 같지 않아 그런 걱정들을 하고 있었다. 피난민들의 상경 행렬은 날이 저물도록 계속되었고 하루 이틀에 그친 것도 아니었다. 그들은 점심때가 되면 약속이나 된 듯이 모두 관 촌부락으로 밀어닥쳐 짐을 내렸다. 양지바른 산기슭에 물이 흔한 까닭이었다.
村里人也不像局外人,也替他们担心。避难民返京的行列一直持续到日头偏西,也不会一天两天就能结束。一到晌午,他们像商量好了似的,一齐涌入冠村部落放下行李。因为这里是向阳的山脚而且水多。

그네들은 흔히 오붓한 바위 밑이나 바람 없이 볕이 잘 괴는 논둑 밑에 자리를 잡았다. 자리가 만들어지면 어른과 아이는 두 패로 갈려, 각자 맡은 바에 충실하고자 뒤 한 번 돌아보지 않았다.
他们往往在突出的岩石下面或背风向阳的田埂下落脚。落下脚后,大人和小孩分成两伙儿出去,为了忠于承担的任务,连头都不回一下。

삼대에 걸친 네 분의 신명을 하루아침에 잃은 폐허 속에서 겨우 살아남아 외롭게 된 나로서는, 그네들 한 가족이 소꿉장난하듯 움직이는 꼴이 여간 부럽지 않았다.
在一个早上就失去了三代四条性命的废墟里,幸存下来却无比孤单的我,可不是一般地羡慕他们一家人像过家家一样迁徙的模样。

가장인 듯한 사람은 돌로 솥걸이 화덕을 만들었고, 주부는 우물에 와서 식사 준비를 했으며, 아이들은 뒷산으로 치달아 올라 나무를 줍는 거였다. 낫이나 같퀴가 없으므로 솔방울, 삭정이 따위를 주웠고, 때로는 논이나 밭고랑에 낸 퇴비와 두엄을 걷어다 때기도 했다.
像家长模样的人用石块儿架起灶台,主妇来到井边准备炊事,孩子们跑上后山捡柴草。因为没有镰刀或耙子,只能捡些松果、枯枝一类回来,有时候也拾一些洒在田地里的堆肥或粪肥回来烧。

점심이 끝나면 지체 없이 가던 길로 다시 들어섰고, 이튿날에는 다른 가족이 뒤를 이어 같은 일을 되풀이하고 있었다. 그러나 해거름 녘에 닿은 사람들은 으레 하룻밤 묵어가기로 작정한 것 같았다. 그들은 빈방을 빌려가지고 군불까지 지펴가며 노독을 풀었다.
吃完晌饭,就迫不及待地踏上了原来的旅途。第二天又有别的人家接着重复同样的事。但是日落西山时分抵达这里的人们,一般都会决定住一晚再走。他们借了空房间,还烧上炕火缓解旅途劳累。

우리 집은 항상 그런 사람들로 붐비고 있었다. 집에 너른데다 가족마저 반실되어 주인 잃고 놀던 방이 한두 칸 아니었으니, 찾아온 길손들로 문전성시를 이룰밖에 없는 일이었다.
我们家总是挤满了这样的人。因为宅院宽阔而且失去了一半的家人,失去主人而空闲下来的房间不只一两间,所以只能被找上门来的旅人挤得门庭若市。

더구나 마을에서 허우대 좋기로 으뜸가던 집이었으니 그들이 주목을 한 것도 당연한 일이었다. 우리는 빈방을 서슴없이 내주기는 했지만 그들을 달갑게 여기거나 측은하게 생각한 적은 없었다. 성가시고 시끄럽기만 했으니까.
更何况我家在这地方是大宅阔院首屈一指的人家,引起他们的注意是想当然的事。虽然我们毫不迟疑地借给他们房间,却从未心甘情愿或是动过恻隐之心。他们只令人讨厌和麻烦。

그것은 너무도 시달리고 부대낀 탓이었다. 그것은 떼거리로 몰려온 그들의 요구 사항을 선뜻 들어줄 형편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因为我们饱受这些人的折腾而遭了很多罪。这是因为以我们的境况,很难痛快地满足这些蜂涌而来的人提出的各种要求。

그들은 여러 가지를 요구하지 않았다. 값지다거나 소중한 것도 아니었다. 간장, 된장, 소금, 고춧가루, 더러는 김치 맛보기를 원으로 하던 이도 있었다.
他们提出了各种各样的要求。也不是什么值钱的或珍贵的东西。酱油、大酱、盐、辣椒面,也有一些以尝尝辣白菜泡菜为宿愿的人。

하룻밤 묵어가기로 작정한 경우, 아녀자들은 버덩이나 등성이 기슭, 그리고 논두렁밭두둑으로 퍼져 새로 돋아난 나물들, 쑥. 냉이. 소루쟁이. 질경이 따위를 뜯어다 삶던 것이었다.
决定住一晚就走的时候,妇人和孩子们就散布到荒野或是山梁坡上,还有水田埂和旱田垄沟里,采摘生出新芽的野菜、篷蒿、荠菜、羊蹄草、桔梗一类回来煮。

모든 것을 얻어다 먹던 우리 형편으로서는 어느 한 가지도 그들이 원하는 것을 나누어 줄 수가 없었다.
我们家所有吃的都靠从外面借来吃,他们想要的哪一样我们都不可能分给他们。[/cn

앞서 말한 바와 같이 장독대가 가 보았자 토 뜨는 간장 한 종지, 맛 가신 된장 한 덩이 남아 있지 않았던 것이다.
[cn]跟前面提到的一样,就算去酱缸台[5]那边,也找不出一小碗泛起酱油渣的酱油,或是一块变了味儿的大酱。

그러나 그네들은 없다는 말을 곧이들으려 하지 않았다. 이렇듯 덩실한 집에서 박절하게 거절한 법이 없다던 거였다.
可是他们绝不肯轻信“没有”的话。就是说如此深宅大户,不应该薄情地拒绝他们。

특히 적삼 위로 제법 가슴살이 오른 처녀나 여남은 살 된 계집애가 그릇을 들고 들어섰다. 하면, 우리가 별소리를 다해서 빌어도 소용이 없던 것이다.
特别是衬衫下面胸脯隆起来的姑娘,或是十来岁的女孩儿走进来的话,不管我们说一千道一万地衰求都没用。

“사람이 집 떠나면 독해진다더니 증말이구먼. 워쩌면 그리 비윗장이 좋구 끈적대는구.” 나그네라면 넌더리가 났던 어머니는 결국 그들의 끈기를 감탄해 마지않았다. 그렇잖아도 씁뜰한 쑥국을 맨탕으로 끓이면 어찌 먹겠느냐, 양념 없이 무친 들나물인데 간을 못하면 짐짐해서 어찌 먹겠는냐, 그들은 그런 항의를 하면서 대문간이나 토방에 눌어붙으면 물러갈 줄을 몰랐다.
“都说人离了家就变得毒起来了,真这话呀。怎么脸皮那么厚那么难缠呐。”一提过路人,无比厌烦的妈妈也不胜感叹他们的韧性。苦涩的篷篙汤炖成清汤怎么喝呀,没有调料拌的野菜,不放点咸盐的话,寡寡的怎么吃啊,那些人一边发出这类抗议,一边坐到门房或是房檐下的土阶上赖着不走。

정말 없어서 못 주는 딱한 사정-지금 돌이켜 생각해 봐도 웃을 일이 아니었다. 윤 영감네 일가를 만날 수 있었던 것도 바로 그런 경우였다.
实在是没什么可给的两难处境——现在回忆起来,也不是件能一笑了之的事。见到尹老头儿一家的时候,也是在那种情况下。

윤 영감네 일가가 우리 밭마당 가장자리 도랑 옆에 짐을 풀고 안으로 들어 온 것은 그 무렵 어느 날, 저녁 식사도 마친 해거름 녘이었다.
尹老头儿一家到我家大门外路边的水沟旁放下行李,走进我们家的时候,正是那年的某一天,吃完晚饭日落西山时分。

 词 汇 学 习

덩실하다: (建筑物等)高大。巍然。岿然。巍峨。魁梧。 

덩실한 산봉우리가 찬바람을 막아 준다.
高矗的山峰挡住了寒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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