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회 삼두 정치의 시작과 몰락] 카이사르가 죽은 뒤 그의 양자인 아우구스투스(옥타비아누스)와 부하였던 안토니우스 그리고 정치가인 레피두스 등 세 사람은 '제2회…

[제2회 삼두 정치의 시작과 몰락] 카이사르가 죽은 뒤 그의 양자인 아우구스투스(옥타비아누스)와 부하였던 안토니우스 그리고 정치가인 레피두스 등 세 사람은 '제2회 삼두 정치'를 시작하였다. 그러나 얼마 후 레피두스가 세력을 잃자 안토니우스는 로마 영토의 동부를, 아우구스투스는 서부를 지배하면서 서로 대립 상태를 이루었다. 이때 안토니우스는 이집트의 여왕 클레오파트라의 아름다움에 반해 결혼을 하고 로마의 일부 영토를 선물로 주었다. 아우구스투스는 안토니우스의 이와 같은 국가에 대한 반역 행위를 그냥 둘 수 없다고 하여 안토니우스 정벌에 나섰다. 그리하여 아우구스투스는 악티움 해전에서 안토니우스와 클레오파트라의 연합군을 쳐부수고 이집트를 완전히 로마 영토로 만들었다.

[제정 시대의 성립] 로마에 개선한 아우구스투스는 정치·군사상의 실권을 한손에 쥐었다. 그는 카이사르의 실패를 거울삼아 공화 정치의 질서를 존중하여 원로원과 공동 통치하는 형식을 취했지만 사실상 황제나 다름없었다. 따라서 로마는 이때부터 제정 시대로 들어가게 되었다.

[아우구스투스의 업적] 아우구스투스는 실업자 구제 등 내정에 힘쓰는 한편, 로마 시민의 긍지와 국가의 위신을 높이기 위해 학문과 예술을 장려하고 로마 시를 아름답게 꾸몄다. 그리하여 로마 문화의 황금시대가 이룩되고 벽돌의 로마가 대리석의 로마로 모습을 바꾸었다.

[클레오파트라] 이집트 프톨레마이오스 왕조의 마지막 여왕(재위 기원전 51~기원전 30년)이다. 카이사르의 힘을 빌려 왕위에 올랐다. 그리고 카이사르를 따라 로마에 가서 살다가 카이사르가 죽은 후 이집트로 돌아왔다. 그 후 안토니우스와 연합하여 아우구스투스와 싸웠으나 크게 패하자 스스로 독사에게 물려 목숨을 끊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