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토 확장] 당나라는 태종과 그의 뒤를 이은 고종 때 사방을 정복하여 중국 역사상 일찍이 볼 수 없던 대제국을 건설하였다. 동쪽으로는 신라와 연합하여 백제·고구려를…

[영토 확장] 당나라는 태종과 그의 뒤를 이은 고종 때 사방을 정복하여 중국 역사상 일찍이 볼 수 없던 대제국을 건설하였다. 동쪽으로는 신라와 연합하여 백제·고구려를 멸망시키고 만주에까지 세력을 미쳤으며, 북쪽으로는 외몽골 지방에서 위세를 떨치고 있던 동돌궐을 멸망시키고, 위구르 등 북방의 유목 민족을 지배하에 넣었다. 또 서쪽으로는 티베트·서돌궐을 차례로 정복하고 파미르 고원을 넘어 중앙아시아 깊숙이 진출하여, 이슬람 제국과 국경을 접하였다. 이리하여 서역의 나라들이 당의 직접 통치를 받게 되고, 한나라 때 개척된 비단길이 다시 활기를 띠었다. 또한 남쪽으로는 안남(베트남)을 복속하고 참파·크메르(캄보디아)·스리비자야 등 여러 나라로 하여금 조공을 바치게 하였다.

[식민지 통치] 당나라는 이들 정복지를 통치하기 위하여 만주에 안동 도호부, 몽골에 안북 도호부, 베트남에 안남 도호부 등 모두 여섯 군데에 도호부를 두었다. 그러나 당나라는 이민족을 직접 통치하지는 않고 그들의 자치에 맡겼으며, 뒤에서 감시만 하였다. 이러한 통치 방법을 기미 정책이라 한다.

[당의 발전과 동아시아 문화권의 형성] 당나라의 이와 같은 대외 발전에 따라 수도 장안은 크게 번영하였다. 각국의 사신과 유학생·상인들이 모여들고 외국의 갖가지 문물이 전해져 세계 제일의 국제 도시로 발전하였다. 한편 신라·발해·일본 등 주변의 나라들은 당의 번영에 자극되어 당나라와 외교 관계를 맺고 당의 문화 흡수에 노력하였다. 그리하여 중국을 중심으로 하는 동아시아 문화권이 형성되기 시작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