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과의 국교 재개/일본에 통신사 파견/일본과의 무역

[일본과의 국교 재개]

왜란으로 인하여 우리나라와 일본의 국교는 단절되었다.

1. 일본의 변화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도요토미 정권을 몰아낸 뒤 지금의 도쿄에 막부를 설치하고 일본의 통치권을 장악한 다음, 우리나라와의 국교 회복을 열망하였다.

2. 일본의 교류 요청
(1) 일본은 잡아간 우리 백성들을 돌려보내는 등 성의를 다하면서 다시 외교를 틀 것을 요청하였다. 이에 우리나라에서는 국초부터 펴 온 이웃 나라와의 교린 정책의 원칙을 살려 도쿠가와 정권과의 외교를 재개하였다.
(2) 조선은 일본의 요청에 따라 그동안 중단되었던 통신사 파견을 재개하고, 일본 배들이 부산항을 드나들며 교역할 수 있는 길을 열어 주었다.

[일본에 통신사 파견]

1. 통신사의 규모
통신사는 약 300명에서 500명의 인원으로 편성되었으며, 일본의 정중한 대접을 받으면서 왕래하였다.
2. 통신사 파견의 역사
우리나라가 일본에 정식으로 통신사를 파견한 것은 세종 때가 처음이다. 그 뒤 계속하여 통신사를 파견하다가 15세기 중엽에 중단한 뒤, 임진왜란 후 일본 정부의 간청에 따라 다시 통신사를 파견하게 된 것이다. 

3. 통신사를 통한 문물 교류
통신사의 왕래를 통해 양국 사이의 문화 교류도 활발하였다. 조선의 사신이 일본에 도착하여 에도에 이르는 도중에 일본의 학자와 예술가 등이 찾아와 조선의 문물을 배우려 하였다.

[일본과의 무역]

일본과의 무역도 행해졌다. 해마다 조선에서 많은 면포가 일본으로 건너가고, 일본에서는 구리가 들어왔다. 또한, 담배와 고추, 토마토, 고구마 등도 일본과의 무역을 통해 우리나라에 전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