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学,就是用语言塑造形象反映社会生活,又用极强烈的感染力影响社会生活。我们为具备一定阅读基础的童鞋准备的韩国文学名作大餐,希望大家提高阅读的同时,感受这些文学作品中的优美文字感情和艺术表现手法。

화무십일① — 이문구
花无十日① — 李文求

신작 로 초입에는 여러 채의 오죽잖은 집장수 집들이 좀좀하게 늘어져 있었는데, 그 중에서도 그 시간까지 창밖으로 불을 밝히고 있던 집은 관촌 이발소였다.
大路的入口处窄窄地散落着几座不起眼的出租房,其中一间到这时还透出灯光的房子,是冠村理发馆。

이발소형광등 은 제법 구실을 하여, 건너편 주막집의 신통찮은 간판이며, 판자 울타리에 붙어 있던 혼분식 장려 담화문까지 뚜렷하게 밝혀주고 있었다.
这家理发馆的荧光灯的确发挥了作用,连对面酒馆的破牌匾、贴在木板障子上的OOO的奖励谈话文也都灰蒙蒙地照亮了。

이발소 안에는 젊은 사내 몇이 난롯가에 둘러서서 어름거리고 있었는데 아마도 일찍 들어가기에는 한 일이 너무 없어 미루적거리고 있는 이발사들 같았다.
理发馆里面有几个年轻人围着火炉站着磨蹭,大概是想早些回家呢,又觉得没干什么活儿不好意思,在那儿磨蹭时间的理发师们。

나는 문득 그 이발소 안을 잠시 들여다보고 갔으면 하는 엉뚱한 생각이 솟았다.
突然间产生了一个冒失念头,想走进那家理发馆看一看。

그 안으로 들어가서 나도 느루 쓰느라고 마디게 태워 끄느름한 연탄 난롯가에 서성거리면서, 아는 사람들 소식을 두루 묻든가, 아니면 담배라도 한 대 끄고 나서면 옥죄인 가슴이 조금은 풀릴 것 같은 느낌이었다.
有一种进到里面,也站到因为碳火微弱而显得黯淡的火炉旁踱来踱去,一一打听我认识的人的消息,或者掐灭一根烟再出来的话,绷紧的胸口也许会放松一些的感觉。

그런 어쭙잖은 잡념으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엉거주춤 서 있던 나는, 나 자신도 모르게 흠칫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我因为这些琐碎的杂念而犹豫着踌躇不定时,不经意间突然惊得一颤。

난데없는 사람이 이만한 그림자를 데리고 이발관 옆을 지나갔던 바, 그 뒷모습이 너무도 눈에 익은, 그러나 이미 오래 전에 잃어버린 바로 그 사람의 그것과 아주 닮은꼴이기 때문이었다.
一个突如其来的人拖着长长的影子经过理发馆前,他的背影跟已经非常眼熟、可是很久以前已经忘却的背影实在太像了。

나는 다시 한 번 먼젓 것에 버금가는 섬뜩함을 느꼈다. 그것은 단순한 엉겁결의 착각일 뿐, 역시 그 영감의 모습은 아니었던 것이다.
我再一次感觉到了仅次于前一次的寒战。这纯粹是下意识地错觉而已,这次也不是那个老头儿的背影。

그저 지나치던 무심한 행인이 하필 그렇게 보일 것은 무엇인가, 더구나 나보다 십여 년이나 앞질러 관촌 부락을 등졌고, 떠나던 마지막 뒷모습을 시야 바깥까지 전송한 기억도 선명한 터에.
本来只是无意中经过的行人,怎么偏偏会产生错觉呢。更何况比我早十几年离开了冠村部落,而且目送那离去的最后背影直到消失于视野之外的印象至今还很鲜明。

그럼에도 갈 길을 가던 행인의 뒷모습이 어둠과 한 가지가 되도록 지켜보았으니, 그 행인이 윤 영감으로 헛된 까닭은 그 다음에야 알 수 있었다.
即便如此,我仍然注视那过路的行人的背影,直到他与夜色融为一体。随后才弄清把那个行人错看成尹老头儿的原因。

공교롭게, 물론 우연이지만, 그 행인 역시 여러 가지 소반을 한 짐 잔뜩 짊어진 소반 장수였던 것이다. 나이도 그만한 뿐더러 차린 주제꼴이나 하며, 늙어 추레한 모습이 천연 윤 영감이던 것이다.
真的很巧,当然是偶然,那个行人也是一个背着一堆各式小饭桌的饭桌商贩。不仅年龄相仿,穷酸的衣着打扮、年老委琐的模样浑然就是尹老头儿。

내가 내처 윤 영감의 옛 모습을 챙겨 되살려보기 비롯한 것도 그래서 그리 된 거였다. 나는 걸어 나오면서 윤 영감의 일을 차근차근 되살려보기에 추위마저 잊고 있었다.
我进而开始回想尹老头儿的往日模样等等,也都是出于这一原因。我一边踱出来,一边仔细回想尹老头儿的事,连寒冷都未察觉。

그해에 있는 일들을 회고하면 시방도 몸서리가 나며 끔찍스럽기만 하다. 그날그날이 하루같이 징그러워 생지옥으로만 여겨지던 해였으니까.
一回想那年发生的事,直到现在也会打着寒噤心里发怵。因为那年的每一天都令人心悸厌恶如同地狱一般。

내남적 없이 난리 끝에 우습게 지어 거둔 농사라 세안부터 양식이 달랑거리지 않은 집이 없었으므로, 그 무렵에는 보황 안 난 집이 드물고 채독들지 않은 사람이 귀하던 시절이었다.
大家彼此都一样在战乱的末尾耕种了一丁点儿庄嫁,没有哪一家不是从年底就开始闹粮荒的,所以那时候很少有没出现浮黄病的人家,很少有没生菜毒症[1]的人的时期。

해토머리 를 맞고부터 곡기 끊긴 집이 하나 둘 늘어갔고, 주리다 못해 배를 졸라매며 들머리를 불러보면 보리밭은 겨우 오월 그믐께 못자리 꼴, 어느 세월에 배동오르고 패어 풋보리죽이나마 양을 채우게 될는지 막연한 판이었다.
刚一解冻,断了炊粮的人家接二连三的增加了,实在没法省了就勒紧腰带,到田头四下环顾,也只见到大麦田才五月底的苗床模样,到啥时候麦子能灌浆结穗,熬碗嫩麦子粥充饥啊,正是眼前一片渺茫的时候。

처마 밑에 매달린 시래기 몇 두름을 진동항아리 위하듯 할밖에 없었고, 먹잘 것이라고는 사방을 휘둘러보아도 세월없이 괴어 흐르던 동네 우물물뿐인 마른 봄판이었다. 그럼에도 기적 같던 것은, 굶어 죽어 간다는 사람이 없는 일이었다.
用吊在屋檐下的干菜叶子填塞镇东缸[2]一样节省,能吃的东西,环顾四周就只有那历经无数岁月积聚的井水了,真是一片干枯的春季田野。即便如此,像奇迹般的居然没有因饥饿死去的人。

진잎에 된장기 하여 국물로 배를 채우고, 밀기울로 개떡을 쪄서 요기해서라도 주려 죽었다던 사람은 없었던 것이다. 그래도 관촌 사람들은 땅을 내놓거나 하지는 않았다. 막막한 대로 참고 견뎌 보자는 배짱이었다.
哪怕用菜叶子掺大酱炖的汤水填饱肚子,用麸子蒸成糠疙瘩充饥,也没有饿死的人。在这种境况下,冠村部落也没人出让土地。这是要在茫茫然中忍耐并且坚持的骨气。

마을 사람들이 푼돈이나마 얻어 연명할 수 있는 수단이라고는 개펄에 나가는 일이었다. 
村里人能够赚些零钱延命的手段,只有去滩涂了。

게나 조개를 잡고 고동과 파래를 뜯어내는 일, 그리고 산에 올라 나무를 해서 돈 사서 가루 되라도 팔아다 잇는 두 가지 방도뿐이었다.
抓些蟹子和贝类,采摘海螺和海苔的营生,还有就是到山上砍木头卖钱或做成面粉升换钱糊口这两种办法了。

 词 汇 学 习

난데없다:突如其来。突然。无根无据。无缘无故。 

나는 난데없는 소나기에 쫄딱 젖어 집으로 돌아왔다.
冷不丁地下起了雷阵雨,我淋得像个落汤鸡似的回了家。

 点击查看更多此系列文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