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24일은 한국과 중국이 수교한지 32주년이 되는 날이다. 한·중이 수교한 그해에 대학별로 중문학과가 전통적 인기학과들을 제치고 어문 계열에서 가장 선호될 거라는 소문이 돌았던 기억이 난다. 우리나라 대학 입시는 국내외 동향에도 민감해 한·중 관계가 우호적이면 중문학계 전반에 훈풍이 분다. 필자도 장밋빛 기대를 안고 1992년에 중문학과 대학원에 진학했던 기억이 새롭다.
수교 이후 한·중 교류는 비약적으로 발전했다. 1992년 63억 달러였던 교역 규모는 30년 만에 3000억 달러를 돌파했다. 2003년에는 중국이 미국을 제치고 한국의 제1 교역국이 됐다. 한·중 관계에 밀월이 이어지면서 2015년에는 한·중 자유무역협정(FTA)도 체결했다.
무역에서 시작된 한·중 교류와 우호 관계는 사회·문화 부문으로 확산했다. 한국 TV 드라마는 2014년 ‘별에서 온 그대’와 2016년 ‘태양의 후예’까지 중국에서 한류 열풍을 일으켰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2014년 7월 사상 처음 북한보다 한국을 먼저 방문하는 호의를 보여줬고, 이에 화답해 이듬해 9월엔 박근혜 대통령이 톈안먼 전승절 열병식에 파격적으로 참석했다.
2013년부터 2016년 초반까지 중문학과 입학에 요구되는 성적은 한동안 인문대에서 고공 행진했다. 그러나 2016년 주한 미군의 사드(THAAD) 배치를 계기로 한·중 관계가 급속도로 냉각되면서 중문학과도 하향 곡선을 그리기 시작했다. 북한의 장거리 미사일 위협에 대응하기 위한 방어용인데도 중국은 전략적 위협으로 인식했다. 중국의 한한령(限韓令) 때문에 중국인 관광객도 급감해 관련 산업이 큰 타격을 받았다. 중국에 진출한 한국 기업들은 짐을 싸서 귀국하거나 생산 기지를 동남아 등지로 이전했다.
지난 30여년의 한·중 관계를 돌아보면 부침을 거듭했고 애증이 교차했다. 훈풍이 불다가 갑자기 서리가 내리고, 다시 협력을 외치는 모양새다. “모든 역사는 현대사”라고 설파한 이탈리아 역사가 베네데토 크로체의 말처럼 역사와 지정학을 보면 한·중은 모든 것이 밀접해 이사하지 않는 한 미우나 고우나 함께 살아가야 할 이웃이다.
이런 인식의 내면에는 오랜 역사적 경험을 통해 생긴 상처와 두려움이 있는 것 같다. 과거 중화주의 질서를 강조하던 천하관의 영향으로 한반도 등은 변방 또는 오랑캐 나라(東夷)로 취급됐다. 중국의 재부상을 상징하는 중국몽(中國夢)을 국제사회는 위협으로 간주하고 있다. 한국뿐 아니라 미국·일본·호주·유럽의 반응도 다르지 않다.
그런데도 요즘 국내 대학에서 중국 관련 학과들은 통폐합 위기다. 중국 관련 학과로 입학한 학생들은 1년이 되기도 전에 대다수가 경영학 등 취업에 유리한 학과를 복수전공 또는 부전공하거나 아예 학과를 옮긴다. 중국 전문 인재 풀을 충분히 마련해도 부족할 판에 중국 전문가는커녕 중국어를 구사하고 중국 역사와 문화를 두루 이해하는 중국통은 갈수록 고갈되고 있다. 학생들을 탓할 순 없지만, 현실이 몹시 안타깝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