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직 대통령들의 친필 휘호는 대부분 개인이 소장하거나 기관에서 보관하고 있지만 문화재 등의 현판으로 제작돼 걸린 경우가 적지 않다. 2005년 문화재청이 조사한 바에 따르면 당시 전국 56개의 전직 대통령 친필 현판 중 박 전 대통령의 현판이 42개에 이른다. 재임기간이 18년으로 긴데다 광화문과 현충사, 불국사 등 문화재 복원사업을 지시한 대통령으로서 복원된 문화재에 직접 글씨를 남긴 때문으로 보인다. 많은 만큼 자주 수난을 당하는 것 또한 그의 친필 현판들이다.
前总统的题字大都被个人收藏或机关保管者,但被制作成文化财的的牌匾的情况也不少。根据2005年文化财厅的调查结果,当时全国56个前总统亲笔书写的牌匾中,前总统朴正熙留下的牌匾有42块。因为在他在任18年期间指导过光化门、显宗祠、佛国寺等文化财的修复工程,于是很多修复好的文化财就由他直接写牌匾了。
 
박 전 대통령이 문화재 복원을 추진하며 기치로 내건 ‘민족정기’는 그의 운명과 묘하게 [wk얽히다]얽혀[/wk] 있다. 1979년 안중근 의사 탄생 100주년을 맞아 ‘민족정기의 전당’이라는 휘호를 내린 박 전 대통령은 그 해 10월 서거했다. 그로부터 22년 후 한국민족청년회는 서울 종로 탑골공원 삼일문의 박 전 대통령 친필 현판을 무단 철거했다. 당시 그들이 내세운 명분은 “민족정기를 바로잡기 위해서”였다. 2005년 3월 1일 한 사회단체 대표가 박 전 대통령이 쓴 현판을 무단으로 떼어내 세 동강을 낸 것이다. 이 현판은 다시 동일 글씨체로 복원됐다.
前总统朴正熙这样一边在推进文化财修复工作,一边高挂“民族正气”的旗帜,和他的命运奇妙地交织了在一起。1979年适逢安重根医生诞辰70周年,朴正熙写下了“民族正气的殿堂”几个字后,同年10月便逝世了。从那时起22年后韩国民族青年会,他们以“为正名族正气”的名义,擅自撤去了首尔钟路塔谷公园朴正熙留下来的“三一门”的牌匾。2005年3月1日一个社会团体也擅自拆了朴正熙亲笔写的牌匾并折成了三段。后来这牌匾用相同的字体给复原了。
2005년 시작된 광화문 현판 교체 논란은 아직 진행 중이다. 박 전 대통령의 친필 현판이 광화문에 올라간 것은 1968년, 콘크리트로 광화문을 재건한 직후였다. 2005년 문화재청이 현판 교체를 발표한 후 2010년 고종시대 훈련대장 임태영의 한자체 현판으로 교체했지만 3개월 만에 균열이 발생하면서 아직도 복원 작업 중이다.
另外,2005年开始的光化门牌匾更换的争论仍在持续中。前总统朴正熙亲笔书写的牌匾是在1968年挂上去的,就在用混凝土重建光化门后。到了2005年文化财厅发表了要更换牌匾后,2010年换上了高宗时代训练大将任泰瑛用汉字书写的牌匾。不过三个月过后就牌匾就出现了裂痕,到现在为止也还在修复中。
대통령 현판의 수난은 문화재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민주화 열기가 뜨겁던 1980년 서울대 학생들은 민주화대총회 도중 박 전 대통령이 개교 30주년을 기념해 선물한 도서관 현판 휘호‘민족의 대학’을 떼어내 소각해 버렸다.
总统牌匾的受难不仅局限在文化财里。在民主化浪潮高涨的1980年,首尔大学生们在民主化大总会途中,把前总统朴正熙送予庆祝建校30周年纪念的图书馆牌匾“民主的大学”给拆下来烧毁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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