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 군대의 칩입] 인권 선언 후 국민 의회는 여러 가지 개혁을 실시하는 한편, 헌법 제정에도 착수하였다. 그런데 이때 루이 16세와 왕비 마리 앙투아네트가 왕비의…

[외국 군대의 칩입] 인권 선언 후 국민 의회는 여러 가지 개혁을 실시하는 한편, 헌법 제정에도 착수하였다. 그런데 이때 루이 16세와 왕비 마리 앙투아네트가 왕비의 친정 나라인 오스트리아로 도망하려다 실패하는 사건이 일어났다. 이 사건으로 국민들은 왕을 매우 미워하게 되고 왕정의 폐지를 논의하게 되었다. 이리하여 혁명의 기세가 날로 높아지자 그 영향이 자기 나라에도 미칠 것을 두려워한 오스트리아·프로이센의 군대가 프랑스에 쳐들어 왔다. 의회는 즉시 비상 사태를 선포하고 의용군을 모집하였다. 이에 혁명을 지지하는 청년들이 전국에서 몰려왔는데, 애국심에 불타는 의용군은 정규 군대보다 훨씬 강하여 마침내 외국 군대를 물리치는 데에 성공하였다.

[혁명의 과격화와 공포 정치] 외국의 침입으로 혁명이 더욱 과격하게 되어, 과격파의 세력이 커진 의회는 공화정을 선포하고, 얼마 후 루이 16세를 재판하여 사형에 처하였다. 왕의 처형은 국내외에 커다란 충격을 주어 안으로는 왕당파의 반란이 일어나고 밖으로는 영국·오스트리아·프로이센 등 여러 나라가 동맹을 맺고 프랑스를 위협하였다. 이러한 가운데 과격파(자코뱅당)는 폭동을 일으켜 온건파(지롱드당)를 의회에서 내쫓고 혁명 정부를 세웠다. 자코뱅당의 로베스피에르가 이끄는 혁명 정부는 토지 개혁을 실시하여 무상으로 토지를 나누어 주고 미터법을 실시하는 등 과감히 개혁을 단행하였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혁명 재판소를 두어 반대파를 모조리 잡아서 단두대에 보내어 처형하였다.

[과격파의 몰락] 자유와 평등을 내세운 혁명이 이와 같이 공포 정치로 변하자, 사람들은 더 이상의 혁명을 원하지 않았다. 그리하여 공포 정치를 반대하는 세력이 커져서 로베스피에르와 그 일파는 결국 국민의 적이라는 낙인이 찍혀 사형을 당하였다.

[마리 앙투아네트] 오스트리아의 여제 마리아 테레지아의 딸로 정략 결혼에 의해 루이 16세의 왕비가 되었다. 미모로 이름난 왕비는 사치와 허영심이 강하여 낭비가 심했고, 정치에 간섭하는 등 무분별한 행동을 하여 국민들의 미움을 샀다. 결국 앙투아네트도 남편의 뒤를 이어 처형되었다.

[기요틴] 프랑스 혁명 당시 사형 집행에 사용된 기구로서, 단두대라고도 한다. 이 기구는 그 전부터 이미 사용되어 왔는데, 의원인 기요탱이 죄인의 고통을 덜어 주기 위하여 이 기구의 사용을 제안한 데서 이름이 붙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