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동남아 진출 야욕] 일본은 유럽에서 대전이 일어나기 2년 전부터 중국과 전쟁을 계속하고 있었다. 중국인의 민족적 저항을 받은 데다 미국·영국 등이 중국을 원…

[일본의 동남아 진출 야욕]

일본은 유럽에서 대전이 일어나기 2년 전부터 중국과 전쟁을 계속하고 있었다. 중국인의 민족적 저항을 받은 데다 미국·영국 등이 중국을 원조했기 때문인데, 중국의 항일 전쟁을 지원하고 있던 미국은 1939년 미일 통상 조약을 파기하고 일본에 대한 석유 수출을 중단하였다. 이에 곤경에 빠진 일본은 여기에서 벗어나기 위해 침략을 정당화하는 '대동아 공영권'의 건설을 선전하면서, 석유·고무 등의 중요한 자원을 확보하고자 동남아시아로의 진출을 꾀하였다. 또한 대전 초기에 중립을 지켰던 일본은 독일·이탈리아가 결정적인 우세를 보이자 이들 나라와 새로 3국 군사 동맹을 맺고, 세력을 동남아시아 방면으로 뻗쳐 나갔다.

[일본의 전쟁 도발] 

동남아시아에 많은 식민지를 가지고 있던 영국과 네덜란드도 미국·중국과 함께 일본에 대항하여 'ABCD 라인'이 형성되었다. 국제적으로 고립된 일본은 미국과 협상을 시도했지만, 미국은 해외에 나가 있는 일본군의 전면 철수를 강력히 요구했으므로 두 나라의 관계는 갈수록 악화되었다. 이러한 와중에 일본에서는 군부를 중심으로 한 미국과의 전쟁론이 우세해져 1941년 일본군의 진주만 기습 공격으로 태평양 전쟁이 일어났다. 진주만 기습에 뒤이어 일본군은 순식간에 홍콩·필리핀·자바·수마트라·미얀마 등을 잇따라 점령하여 1942년 전반까지 남태평양 일대가 일본의 지배 아래 들어갔다.

[대동아 공영권]

일본이 1940년부터 그들의 침략 전쟁을 정당화하기 위하여 내세운 선전 구호로, 그 내용은 서양의 식민 통치로 고통받는 아시아 지역을 일본이 중심이 되어 새로운 질서 밑에서 번영시키겠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