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문화의 쇠퇴] 몽골 족은 이슬람 문화의 영향을 크게 받고 있었으므로 중국 문화를 별로 숭상하지 않았다. 그래서 중국을 지배하게 된 후에도 다른 민족들처럼 중국…

[중국 문화의 쇠퇴] 몽골 족은 이슬람 문화의 영향을 크게 받고 있었으므로 중국 문화를 별로 숭상하지 않았다. 그래서 중국을 지배하게 된 후에도 다른 민족들처럼 중국 문화에 깊이 동화되지 않았다. 원나라는 몽골 어를 공용어로 썼으며, 공문서에는 '위구르 문자'와 함께 '파스파 문자'를 사용하였다. 한편 원나라는 티베트 인이 믿는 라마교를 국교로 삼고, 과거 제도도 거의 실시하지 않았으므로 중국의 전통적 학문인 유학은 매우 부진하였다.

[서민 문화의 발달] 송나라 때에 유행하기 시작한 잡극·소설 등의 서민 문화는 이 시대에 와서 더욱 성행하였다. 특히 잡극은 창(唱)을 중심으로 한 연극으로 발전하여 원나라 문화를 대표하였다. 이에 따라 <서상기>, <비파기> 같은 뛰어난 희곡 작품이 나왔다. 또 중국의 소설 문학을 대표하는 <수호전>, <서유기>, <삼국지연의> 등도 이 시대에 틀이 잡혔다. 이와 같은 서민 문화가 발달하게 된 것은 상공업과 도시의 발달로 도시민의 생활에 여유가 생겼기 때문이며, 또 몽골 인의 지배 아래서 차별 대우를 받아 출세의 길이 막힌 지식인이나 사대부들이 학문보다는 이 방면에 관심을 기울인 데에도 원인이 있었다.

[파스파 문자] 원나라 세조 쿠빌라이의 명에 따라 파스파가 만든 것으로, 티베트 문자를 바탕으로 한 표음 문자였다. 그러나 쓰기에 불편하여 세조가 죽은 뒤에는 쓰이지 않았다.

[위구르 문자] 중국 서북 지방에 살던 유목 민족이 쓰던 문자이다. 위구르 족은 원래 외몽골 유역을 근거지로 유목 생활을 하던 민족으로, 이들은 이집트의 상형 문자와는 또 다른 그림 문자 형식의 문자를 가지고 있었는데 기록의 형식이나 내용은 분명하게 해독되어 있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