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복의 기쁨/미국과 소련의 군정 실시/한반도를 둘러싼 강대국의 이해 관계

[광복의 기쁨]

조국이 광복되던 날 우리 겨레는 방방곡곡 거리거리에 쏟아져 나와 숨겨 두었던 태극기를 흔들며 애국가와 "대한 독립 만세"를 외치며 나라 찾은 기쁨을 나누었다. 외국으로 망명했던 지도자들이 돌아오기 시작하고, 일제에 징병과 징용으로 끌려갔던 가족들도 돌아왔다. 이제 그렇게도 그리던 우리 주권을 되찾아 우리 손으로 우리나라를 세울 수 있다는 기쁨과 희망에 가득 차 있었다.

[미국과 소련의 군정 실시] 

우리 민족의 광복은 완전 독립으로 이어지지 못하였다. 그것은 미국과 소련의 군사적인 이해 관계로 인해 북위 38˚를 경계로 미국과 소련의 양국 군대가 우리나라의 남과 북에 각각 주둔해서 군정을 실시했기 때문이다. 남한과 북한에서 우리의 뜻과는 상관없이 미군과 소련군에 의한 군정이 실시되자 독립을 애타게 기다려 오던 온 국민은 크게 실망하였다.

[한반도에 둘러싼 강대국의 이해 관계] 

1943년 미국과 영국, 중국은 카이로 선언에서 "한국 인민의 노예 상태에 유의하여 적당한 시기에 한국을 해방시키고 독립시킬 것을 결의한다"고 세계에 선포하였다. 이 결의는 포츠담 선언에서 재확인되어 우리나라의 독립은 기정사실이 된 셈이었다. 하지만 강대국의 미묘한 이해 관계로 인하여 실현되지 못하였다. 1945년 2월에 열린 얄타 회담은 바로 그 이해 관계가 구체화된 회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