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의 주권 침탈/3·1 운동/독립 선언서/대한 민국 임시 정부

[일제의 주권 침탈]

우리나라는 조선 시대 말기부터 국론의 통일이 이루어지지 못하고, 관리들이 자신의 이익에만 눈이 어두워 백성들의 생활을 돌보지 않았다. 또한 서양의 발전된 문물을 받아들이기를 꺼림으로써 국력은 점점 약해져 갔다. 이에 강대국들의 침략에 강력하게 대응하지 못하다가 마침내 일본에게 나라를 빼앗겼다. 일본은 동아시아에서 제일 먼저 근대 서양의 발달된 문물을 받아들여 국력을 키우고 군비를 강화하였다. 그리고 대륙 침략의 야심을 품고 우리나라에서 강대국들과 싸움을 벌였다. 청∙일 전쟁과 러∙일 전쟁에서 승리한 일본은 세력이 더욱 강해져서 결국 1910년에 우리나라를 강제 점령하였다.

[3·1 운동]

나라를 잃은 우리 민족은 주권을 빼앗기고, 자유가 없는 노예와 같이 고통스러운 생활을 해야만 했다. 그러나 뜻 있는 사람들은 나라를 되찾기 위해 해외로 나가 독립 운동에 힘썼다. 그 무렵 나라 안의 인사들은 1919년 3월 1일 서울 탑골 공원에서 우리나라의 독립을 세계에 선포하였으며, 이와 때를 맞춰 전국 방방곡곡에서 온 국민이 함께 일어나 대한 독립 만세를 외치면서 일본에 항거하였다. 3·1 운동은 우리나라의 민족 독립 의지를 역사적으로 나타낸 운동이었다.

[독립 선언서]

우리나라가 주권을 가진 독립 국가임을 선언한 글이다. 기미 독립 선언문이라고도 한다. 3·1 운동 때 민족 대표 33인의 이름으로 조선이 독립국임을 국내외에 선언하였다. 본문은 최남선이, 공약 3장은 한용운이 기초하였다. 선언서에서는 조선 독립의 목적과 뜻을 밝히고, 국권을 잃은 뒤의 우리의 손실과 독립의 정당성을 주장하면서 민족의 결의를 밝혔다.

[대한민국 임시 정부]

나라를 되찾기 위해 해외 각지로 망명했던 독립 지사들은 3·1 운동이 일어난 것을 계기로 1919년 4월 중국 상하이의 프랑스 조계(租界)에 모여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수립하였다. 이 임시 정부가 독립 운동의 중심적 역할을 하였고, 헌법을 제정해 정부 조직, 대통령 선거, 각부 장관 임명 등을 통해 새로운 민주 국가로 발돋움함을 명백히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