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나라의 성립] 황제의 자리를 빼앗은 왕망은 신(新)이란 나라를 세웠다. 왕망은 유가 사상의 신봉자로서, 옛날 주나라 시대를 이상으로 삼아 토지의 국유화, 상업의 …

[신나라의 성립] 황제의 자리를 빼앗은 왕망은 신(新)이란 나라를 세웠다. 왕망은 유가 사상의 신봉자로서, 옛날 주나라 시대를 이상으로 삼아 토지의 국유화, 상업의 억제 등 급격한 개혁을 꾀하였다. 그러나 이와 같은 개혁은 시대의 흐름에 역행하는 것이어서 백성들의 심한 반발에 부딪혀 신나라는 l5년 만에 망하였다.
 
[광무제와 한 왕조의 부활] 신나라가 망하자 왕족의 한 사람인 유수가 한 왕조를 부활시켰다. 이후의 한나라를 후한이라 하고 그 전의 한나라를 전한이라 한다. 후한을 일으킨 광무제(유수)는 전한의 정치 제도를 계승하는 한편, 지방 호족 세력과의 융화를 꾀하면서 사회를 안정시켰다. 그 후 국력이 튼튼해지자 다시 세력을 회복한 흉노를 격파하고 반초 등을 서역(중국의 서쪽에 있던 여러 나라)에 보내어 그곳을 직접 다스리게 하였다. 이리하여 서역과의 교류가 한층 활발해졌다. 인도에서 일어난 불교가 중국에 전해진 것도 이 무렵이었다.

[후한의 실정과 멸망] 2세기에 들어서면서 나이 어린 황제가 잇따라 즉위하자 외척과 환관(내시)이 권력을 잡고 정치를 어지럽혔다. 이에 농민들의 생활고는 극심해지고 사방에서 반란이 일어났다. 그중에서도 '태평도'라는 신앙으로 뭉친 황건의 난이 가장 커서 전국을 휩쓸었다(184년). 이 농민 반란은 정부군에 의해 진압되었지만 각지의 호족들이 서로 세력을 겨루는 혼란 속에서 결국 후한은 망하고(220년), 중국은 긴 분열의 시대로 접어들었다.

[황건의 난] 외척과 환관의 권력 투쟁으로 정치가 혼란해지고 백성들이 생활고에 시달리던 후한 말, 장각이라는 사람이 태평도라는 종교를 만들어 수십 만 신도와 함께 난을 일으켰다. 이를 황건의 난이라고 하는데, 머리에 황색 두건을 썼다고 해서 이런 이름이 붙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