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진왜란 때의 포루투갈 선교사/네덜란드의 벨테브레 일행/네덜란드의 하멜 일행/서양인의 표착이 조선에 미친 영향

인조 때인 17세기 초부터는 동남아시아 방면에서 일본으로 가던 서양의 상선들이 우리나라 해안에 표류해 와 국내에서도 이따금 서양인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임진왜란 때의 포르투갈 선교사]

포르투갈의 선교사 세스페데스가 임진왜란 때에 왜군을 따라 우리나라에 건너와서 한동안 부산 지방에 머문 일이 있었다. 그러나 조선인과의 접촉은 없었다.

[네덜란드의 벨테브레 일행] 

1628년(인조 6년)에 네덜란드 선원 벨테브레 등 3명이 일본으로 가던 중 풍랑을 만나 제주도에 표착했다가 관헌에게 붙잡혀 서울로 끌려왔다. 이들은 대포 만드는 기술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훈련도감에서 대포 만드는 일을 하였다. 그러다 2명은 죽고 벨테브레만이 조선 여자와 결혼해 이름을 박연으로 고치고 일생을 조선에서 살았다.

[네덜란드의 하멜 일행] 

1. 하멜 일행의 표착과 탈출
1653년(효종 4년)에 네덜란드 선원 하멜 등 36명이 제주도에 표착하였다. 이들은 이듬해 서울로 호송된 뒤 훈련도감에서 벨테브레의 감독하에 한동안 무기 제작 등에 종사하였다. 그러나 벨테브레와 달리 하멜 일행은 몰래 탈출을 꾀하다가 조정의 미움을 사서 곧 전라남도 강진, 여수 등지로 옮겨져 노예 취급을 받았다. 그러다 1666년에 하멜을 포함한 일행 8명이 배를 훔쳐 타고 탈출해 일본을 거쳐서 자기 나라로 돌아갔다. 

2. 하멜 표류기
하멜은 그의 조선 체험기인 《하멜 표류기》를 써서 우리나라의 정치와 풍속, 사회·사상 등을 처음으로 서양에 소개하였다. 이 책은 조선을 서양에 소개했다는 사실뿐 아니라, 당시의 조선 사회를 연구하는 데도 귀중한 자료로 활용되고 있다.

[서양인의 표착이 조선에 미친 영향] 

조선에 표착한 서양인들이 우리나라에 큰 영향을 준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이들 표착 서양인들과 명, 청을 통해 꾸준히 도입된 서양 문물로 인해 조선의 지식인들은 그때까지의 중국을 중심으로 한 아시아보다 더 넓은 세계와, 한문 문화와는 또 다른 새로운 문화가 있음을 깨닫게 되었다. 이로 인하여 서양 문화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기 시작하였고, 서양의 과학 기술을 받아들이고 연구하려는 새로운 기운도 일어나기 시작하였다.